확진 노숙인 찾아서 '서울역 삼만리'
지난 8일 오후 4시 45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을 순찰하던 박아론(38) 경사가 반가운 목소리로 허름한 행색의 40대 노숙인을 불러세웠다. “아저씨! 어디 계셨어요? 한참 찾았잖아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노숙인과 며칠 전 술자리를 가져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자가 격리 대상자였다. 잠시 후 응급차가 도착했다. 생수, 햇반, 귤 두어개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광장으로 향하던 이 노숙인은 박 경사의 부름에 순순히 응급차에 올라타 서울 동대문구의 생활치료센터로 향했다.
응급차를 보낸 지 30분쯤 지났을 때, 박 경사의 휴대폰이 울렸다. 서울역 광장에 있는 노숙인 지원 시설인 희망지원센터 직원이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노숙인 4명 중 1명을 찾았어요.” 해당 노숙인은 서울역 무료 급식소인 채움터에 저녁 식사를 하러 왔다가 센터 직원들에게 발견됐다. 박 경사는 이 남성을 인계받아 또다시 생활치료센터로 보냈다.
박 경사는 서울역파출소 소속 노숙인 전담 경관이다. 노숙인에게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연결해주고, 생활의 애로점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2년째 이 일을 하다 보니 서울역 인근에 상주하는 노숙인 100여 명의 얼굴과 이름, 나이, 특징을 줄줄 꿴다. 주로 어디서 자는지, 시간대별 활동 영역은 어딘지 훤히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 확진 노숙인’을 찾는 것도 그의 일이 됐다.
박 경사는 “지난달 25일부터 서울역에 있는 노숙인 확진자 80여 명을 이런 식으로 찾아 치료 시설로 보냈다”며 “아침 10시 전에는 노숙인들이 주로 모여 자는 서울역 지하도를 중심으로 순찰하고, 오후에는 식권을 받으러 오는 광장 주변을 돈다”고 했다.
수도권 최대 노숙인 집결지로 꼽히는 서울역의 노숙인 지원 시설에서 최근 코로나 집단 감염이 발생해 서울역파출소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17일 서울시 희망지원센터 직원 1명이 확진된 이후, 지난 13일까지 114명의 확진자가 쏟아졌다. 센터 직원 등 3명을 뺀 대부분이 노숙인이다. 서울시는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 3800여 명을 대상으로 코로나 전수 조사에 나섰다. 이렇게 진행한 검사 결과는 매일 희망지원센터에 통보된다. 센터는 확진자 명단을 경찰과 공유한다. 박 경사도 매일 아침 이 명단을 들고, 서울역 인근을 종일 돌며 확진자를 찾아낸다. 박 경사는 “노숙인 중에는 한 곳에 오래 갇혀 있기 싫어해 치료 시설로 가지 않으려는 분들이 가끔 있다”며 “오래 봐 온 사이인 만큼 제가 가자고 하면 그래도 잘 따라줘 다행”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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