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두달 앞.. 12년전 '국정원 사찰' 꺼낸 與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5일 이명박(MB)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18대 국회의원 등 각계 인사를 사찰했다는 의혹을 직접 제기하며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반드시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16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국정원에 사찰 문건 목록을 파악해 보고하라고 요구할 방침이다. 국민의힘에선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판세를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정치 공작”이라고 반발했다.
이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국정원이 2009년 18대 의원 299명 전원과 법조인·연예인·언론인 등 1000여명 자료를 파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그 자료엔 돈 씀씀이 등 사생활까지 담겨 있는 등 사찰이 이뤄진 걸로 보여 충격적”이라고 했다. 그는 “오래전 일이라도 결코 덮어놓고 갈 수 없는 중대 범죄”라고 했다. 민주당은 최근 SBS 등 일부 언론이 관련 의혹을 보도한 이후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해왔는데 이 대표까지 가세한 것이다.
SBS는 지난 8일 익명의 ‘국정원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MB 정부 국정원이 작성한 18대 의원 신상 정보가 문건 형태로 국정원에 보관돼 있고 이 문건들은 권재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인 2009년 9월 이후 작성됐다고 보도했다. 문건에는 국세청 등을 통해 확보한 부동산 거래 및 자금 내역 등도 포함됐다고 SBS는 전했다. 이후 민주당은 관련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김경협 국회 정보위원장은 이날 라디오에서 사찰 지시 주체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지목했다. 사찰 대상에 대해선 “특히 친박계 의원들을 낱낱이 조사하라는 지시”라며 “언론계, 법조계 부분도 나와 있다”고 했다.
이런 주장은 작년 하반기부터 일부 제기됐다. 국정원은 작년 11월 국정원을 상대로 낸 정보 공개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등에게 관련 문건 34건을 제공했다. 국정원은 올 1월에는 ‘내놔라 내파일’이란 단체가 정보 공개 청구를 하자 관련 문건 63건을 제공했다. 국정원이 이런 식으로 외부에 제공한 문건에 MB 청와대의 사찰 지시와, 국정원의 사찰 정보가 기재돼 있다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국정원은 18대 의원 사찰 문건과 관련해 “문건의 전체 목록 및 내용을 확인한 바 없다”면서도 “국정원법에 따라 국회 정보위원회 재적위원 3분의 2의 의결이 있을 경우 비공개를 전제로 정보위에 보고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국회 정보위는 전체 12명 중 민주당이 8명으로 단독 의결이 가능하다.
민주당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12년 전 국정원의 사찰 의혹을 다시 제기하고 나오자 국민의힘은 ‘선거용 정치 공작'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난 4년간 적폐 청산 한다며 청와대 캐비닛을 뒤지고 국정원 문서들을 다 들춰놓고 이제 와서 새삼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명백히 선거용 아니냐”고 했다. 특히 야권에선 사찰 시작 시점으로 꼽는 2009년 하반기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경선 후보를 겨냥한 것이란 말이 나왔다. 현재 부산시장 지지도 조사에서 1위를 기록 중인 박 후보는 이날 “사찰 지시를 들은 적도, 관련 자료를 본 적도 없다”며 “여당에서 의혹을 충격적인 것처럼 포장해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박 후보에 이어 MB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익명의 국정원 고위 관계자를 인용한 관련 보도 이후 이낙연 대표가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나온 점을 거론하며 “국정원이 불 지피고 여당 대표가 바람잡이로 나섰다”고 했다. 그는 박지원 국정원장을 겨냥해 “정치 술수의 대가로 알려졌다”며 “정권 초 ‘국정원 적폐청산’에도 드러나지 않았던 문건이 보궐선거 직전에 짠하고 등장했다. 국정원의 정치 공작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선거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이낙연 대표는 “선거가 임박했으니 의혹을 덮으라는 태도야말로 정치 공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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