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나온 가해자들.. 피해자는 10년전 악몽 다시 떠올려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연예인, 방송인 등 유명인이 한창 잘나가는 순간 10여 년 전 학교폭력 사실이 폭로되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밴드 ‘잔나비’의 멤버 유영현은 지난 2019년 학교폭력 피해자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11년 전 나는 많은 괴롭힘과 조롱거리로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다'는 폭로 글을 올리자 사실을 인정하고 밴드를 자진 탈퇴했다. 2013년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6년간의 무명 생활을 버틴 끝에 유명해지자 피해자가 폭로에 나선 것이다. 당시 피해자는 “방송과 광고, 음악페스티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해자의) 음악은 나에겐 정말 큰 고통”이라고 했다.
지난해 4월 이원일 셰프의 약혼녀 김유진 프리랜서 PD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얼굴이 알려지자, ’12년 전 집단 폭행을 당했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의 폭로 글이 올라왔다. 당시 김씨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방송에서도 하차했지만 사실관계를 두고 논란도 빚어졌다. 이후 김씨는 ‘억울하다’는 취지의 글을 남기고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
모두 무명이던 가해자가 유명해지면서, 이것이 피해자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자극해 폭로로 이어진 비슷한 구조다.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과거의 학교폭력 사례가 잇따라 폭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피해자들은 학교에서 제재받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던 가해자가 사회에서도 승리자의 위치에 서는 것을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긴다”고 했다.
가해자에 대한 문제 제기와 그들을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교내 징계 절차인 학교폭력위원회 신고는 재학생 신분일 때만 가능하다. 졸업 후 피해자가 형사고소·민사소송을 할 수도 있지만 단순 폭행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5년이다. 민사소송 소멸시효도 3년이다. 이호진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는 “실제 학교폭력 피해를 입고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찾아오는 피해자들의 나이는 보통 20대 초반”이라며 “피해자들의 사정은 안타깝지만 시효가 지났거나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미 법적처벌 시효가 지났는데, 공소시효조차 없는 ‘대중 재판’에 학교폭력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한 지적도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가해자 입장에선 이미 오래전 일로 비판받는 것이 불편할 수 있지만, 이것이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학교폭력 문제를 뿌리 뽑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