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간 이체 곳곳에 장벽, 닫혀있는 '오픈 뱅킹'
직장인 한모(31)씨는 최근 오픈뱅킹을 등록하고 타행 계좌에서 돈을 넣으면 우대금리를 준다는 신한은행의 한 적금 상품에 가입했다. 오픈뱅킹은 하나의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모든 은행 계좌에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다.
한씨가 가입한 적금은 오픈뱅킹을 이용해 타사 예금에서 신한 적금계좌로 입금한 금액에 대해 우대금리를 얹어준다. 한씨는 편리하게 매달 10만원씩 자동 이체를 걸어놓으려다 “신한 앱 내에서는 타 은행에서 신한으로 자동 이체는 되지 않는다”는 안내를 받았다. 한씨는 “오픈뱅킹을 열면 앱 하나로 모든 금융 거래가 가능할 줄 알았는데 정작 기본적인 자동 이체조차 안 돼서 황당하다”며 “매달 앱에 접속해 일일이 계좌 이체를 해야 하는데 이게 과연 혁신적인 서비스냐”라고 했다.
◇오픈뱅킹 계좌 1억 개 돌파… 실상은 잔액 조회만
지난 2019년 12월 오픈뱅킹이 전면 시행된 지 1년여가 지났다. 지난 1월 말 기준 오픈뱅킹 계좌 수는 1억1200만좌로 집계됐다. 가입자도 6500만명(중복 포함)을 넘었다. 규모로만 따지자면 급성장했지만 이용자 평가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오픈뱅킹 출범 당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소비자들은 하나의 앱에서 은행과 핀테크 기업 금융서비스 전체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비슷한 여러 앱 가운데 하나만 살아남는 ‘원 수퍼 앱’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도 많았다. 하지만 오픈뱅킹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스마트폰에 은행별로 앱을 깔아놓은 이용자가 많다. 다른 은행 금융 상품을 조회하려면 개별 은행 앱에 접속해 확인해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오픈뱅킹 기능은 여전히 계좌 조회나 단순 이체 같은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6월 금융결제원이 은행 오픈뱅킹 이용 현황을 조사했더니 잔액 조회(84.5%)가 대부분이었다. 거래 내역 조회(8.8%)와 출금 이체(3%)가 뒤를 이었다.
계좌가 서로 연동돼 있지만 은행들이 자기 은행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꺼리다 보니 오픈뱅킹 기능 개선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 은행은 현재 기본적인 이체 기능은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타 은행끼리 이체는 안 되는 등 오픈뱅킹 도입 취지가 무색한 사례들도 나온다. 인터넷 전문 은행 카카오뱅크 오픈뱅킹의 경우 다른 은행에서 카카오뱅크로 잔액 ‘가져오기’는 가능하지만 다른 은행끼리 돈을 주고받기는 불가능하다. 오픈뱅킹 핵심 기능인 이른바 ‘타투타(타 은행 to 타 은행)’가 막힌 것이다. 카카오뱅크 이용자 윤모(29)씨는 “카카오뱅크 앱을 메인으로 쓰는데 이체 기능이 제한적이라 기존 은행 앱들을 지우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은행 업계에서는 “그래도 다른 은행들은 고객 편의를 위해 타 은행끼리의 이체를 열어놓는데 카카오뱅크가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마이데이터 사업, 오픈뱅킹 변곡점 될까
오픈뱅킹은 지난해 말 증권사로 확대됐고 올해 카드사와 저축은행에도 도입된다. 오픈뱅킹 적용 범위가 2금융권까지로 넓어진 것이다. 또 올 초 국민·신한·농협·우리·SC제일은행과 네이버파이낸셜·비바리퍼블리카 등 금융사 28곳이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허가를 받으면서 오픈뱅킹 서비스 개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마이데이터는 금융사에 흩어진 개인 신용 정보를 한 곳에 모아 보여주는 서비스이다.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를 연계하면 자산 관리에 특화한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앱에서 금융 상품을 추천하고 계좌 개설 및 이체까지 이어지는 식이다. 하지만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 혜택이 더 좋은 타 은행 상품을 자사 앱에 소개할 리 있겠느냐”며 “현재 오픈뱅킹은 경품성 이벤트를 하며 고객을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이 과제부터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