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65] 초콜릿 걸
아침 햇살이 화사하다. 선이 고운 옆얼굴의 여인이 우윳빛 피부에 잘 어울리는 핑크색 보닛을 쓰고, 어깨에 두른 흰 숄은 허리를 잘록하게 조인 보디스 안으로 단정하게 밀어 넣었다. 그녀가 걸을 때면 슬리퍼의 나무굽이 마룻바닥을 딛는 소리보다 회색 스커트와 빳빳한 리넨 앞치마가 서로 스치며 사부작대는 소리가 더 클 것 같다. 여인은 칠기 쟁반 위에 물 한 컵과 귀한 초콜릿 음료를 받쳐 들고 귀부인의 침상으로 가져가는 중이다. 꽃무늬를 그려 넣은 마이센 도자기는 귀부인이 푹신한 침대에 앉아 쟁반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도록 찻잔을 꽂을 수 있는 은받침에 얹었다.
바스락대는 앞치마, 투명한 유리컵, 매끈하고도 묵직한 칠기의 표면과 부드러운 거품이 찰랑대는 진한 초콜릿의 질감이 손에 만져질 듯 또렷한 이 그림은 장-에티엔 리오타르(Jean-Étienne Liotard·1702~1789)가 벨벳 같은 양피지 위에 파스텔로 그렸다. 리오타르는 박해를 피해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망명한 위그노(칼뱅파 신교도)였던 부모 아래 제네바에서 태어나 화가이자 판화가로 훈련받았다. 파리, 빈, 런던, 로마에서 이스탄불까지 널리 여행하며 견문을 넓힌 리오타르는 이처럼 정교한 세부 묘사와 우아한 분위기가 어우러진 파스텔 초상화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초콜릿 걸’은 주문 제작한 특정인의 초상이 아니라 화가가 파스텔로 낼 수 있는 최대의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능력을 발휘해 선보인 역작이다. 그러고 보니 파스텔과 초콜릿은 둘 다 감미로운 색채에 부드럽고 은은한 질감이 매력적이다.
귀족들의 전유물이던 초콜릿은 19세기 중반에 대중화됐다. 은그릇에 받쳐올 하녀가 없어도 초콜릿은 여전히 달콤하고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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