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문 샷’ 없는 ‘문재인 보유국’

이길성 산업부 차장 2021. 2. 16.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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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설 연휴였던 지난 11~13일 미국에선 1만2714명이 코로나로 숨졌다. 사흘간 하루 평균 4238명, 20초마다 한 명꼴로 목숨을 잃은 셈이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세계 최강국의 자존심은 아직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11일 자 칼럼 ‘다가오는 기술 붐(The Coming Technology Boom)’은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끈다. NYT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쓴 이 칼럼은 ‘2020년대는 2010년대와는 다른 진정한 기술 혁신 시대가 될 것’이라는 기술 낙관주의가 핵심 메시지다. 여기에는 지난 10년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 공유 경제가 억만장자들을 낳았지만 정작 인류의 삶은 혁신적으로 바뀐 게 없다는 비판이 녹아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원했다. 하지만 얻은 건 140자(트위터)였다”(미국 기업가 피터 틸)는 것이다.

사실 칼럼 내용 대부분은 미국 일부 경제학자와 평론가들이 작년 말부터 설파하던 얘기다. 그들은 구글의 AI(인공지능), 테슬라의 자율주행차, 탄소 발생 없는 인공육, 인공핵융합 같은 청정 에너지 등을 낙관론의 근거로 꼽았다. 하지만 브룩스를 비롯한 논자들 모두가 단연 으뜸으로 꼽은 희망의 근거는 따로 있었다. 바로 코로나 백신의 개발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의 저력이었다.

모더나(Moderna) COVID-19 백신. AP 연합뉴스

미국 바이오 기업 모더나가 세계 첫 코로나 백신이자 인류 최초의 mRNA백신 설계를 마친 건 지난해 1월 13일이었다. 중국 장융전 교수가 바이러스의 유전체 정보를 공개한 지 이틀, 미국서 첫 확진자가 나오기 일주일도 더 전의 일이었다. 그 한 달 뒤 미국 내 첫 사망자가 나왔을 때 모더나 백신은 제조 단계를 넘어 임상시험을 위해 미 국립보건원(NIH)을 향하고 있었다. 민간의 첨단 기술력에 전시(戰時) 체제를 가동한 정부 결단이 더해져 백신 개발 역사상 전례 없는 속도를 가능케 한 것이다. 모더나 백신의 성공은 미국 사회에 ‘국가적 에너지를 집중하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줬고 그것이 국가적 비극 와중에도 기술 혁신에 대한 낙관으로 이어진 것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낙관주의가 실현되려면 ‘정부의 역할’이 관건이라고 했다. 혁신의 이득을 소수가 독식하지 못 하도록 하고 민간이 못 하는 ‘문 샷(Moon Shot·달 탐사란 뜻이지만 위험성이 큰 혁신적 프로젝트란 의미로 사용)’ 사업을 정부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은 문 샷 프로젝트를 통해 소련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촉진하는 효과도 누렸다. 당시 미국 전체 반도체 수요의 60%를 NASA(미 항공우주국)가 차지할만큼 수요가 많았던 것이다. 미국의 정부 연구개발(R&D)은 그 때가 정점이었다.

이제 미·중 경쟁이 반세기 전 미국의 ‘문 샷 DNA’를 다시 깨우고 있다. 우주와 AI, 백신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 추월’을 목표로 추격해오는 중국과의 승부를 위해 미 의회도 과감한 예산 지원으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기술 경쟁이 지배할 2020년대 한국의 위상은 어떨까. ‘단군 이래 최대의 과학 사업’인 중이온 가속기, 달 탐사 사업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문재인 보유국’의 과학 분야 제1의 관심사는 신내림 받은 공무원들이 암약한 ‘탈원전’인 게 현실이다. 애플, 테슬라, 구글, 페이스북의 문샷 DNA를 이겨야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웹툰·K팝 말고는 내수가 전부인 상황에서 14억 시장을 업은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에 맞서야 하는 네이버·카카오엔 각자도생밖에 길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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