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익의 진화]배움의 동기가 켜지면 게임은 끝난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2021. 2. 16.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퓨처 쇼크>에서 “미래의 문맹은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일갈했다. 지난 1년 동안의 우리 학교를 떠올리면 먹먹해진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에 학생 간 학습 격차가 커졌다고 응답한 교사들은 전체의 79% 정도였고, 그중 33%는 그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이 와중에도 누구는 배우는 법을 배우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거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왜 이런 격차가 생긴 것일까? 집에 온라인 학습을 도와줄 어른이 없는 경우에 문제가 생긴다고들 한다. 과외나 학원 같은 사교육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로 학력 저하가 일어난다고들 한다. 하지만 교사들의 응답은 사뭇 달랐다. 앞의 조사 결과를 보면, 교사의 65%는 학습 격차가 학생의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그다음이 학부모의 학습 보조 여부, 그리고 학생과 교사 간 소통의 한계 순이었다. 사교육 수강 여부는 그다음이었고, ‘질 높은 원격교육 콘텐츠 부족’은 의외로 학력 격차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응답했다.

팬데믹 시대의 학력 격차에 대한 교사의 이런 관찰과 인식은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 전체가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 오프라인 학교는 학습의 환경 중 하나일 뿐이다. 교육부는 여전히 ‘언제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등교시킬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지만, 등교가 정상화되어도 학습 격차의 문제가 자동으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쯤은 잘 알 것이다. 등교 여부로 학습의 고질적 문제들을 편하게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 오히려 위 결과는 학교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웅변한다. 배우고자 하는 열망!

팬데믹은 자기 주도력이 낮은 아이들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 ‘매일 수업 화면만 보고 있으니 집중도 안 되고 계속 딴짓만 하게 돼요.’ 이런 식의 푸념은 무한 재생 중이다. 자기 주도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의미를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주로 찾는다. 학교를 못 가니, 내 옆자리에 실제로 앉아 있을 경쟁자들이 안 보이고 실제 교실의 외적 자극도 느낄 수가 없다. 비교 대상이 눈앞에서 사라졌으므로 학습 동기도 사라진다.

반면 똑같은 비대면 환경이라도 자기 주도력이 높은 친구들은 새로운 교육환경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닌다. 오프라인 수업을 대체할 온라인 수업을 찾고, 그동안 간과했던 새로운 교육 환경을 즐긴다. 여기서 ‘새로운 교육 환경’이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새롭게 조성된 ‘맞춤형 실감 비대면 교육 공간’을 뜻한다. 놀랍게도 그들에게 팬데믹은 더 큰 성장의 기회다.

사실 우리 아이들의 자기 주도력은 대개 중간 어딘가에 있다. 비대면 교육 환경 때문에 의욕을 더 잃기도 하지만 이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고 싶은 욕구도 있다. 그렇다면 학부모, 교사, 교육당국이 이 시대에 해야 할 일은 바로 학생의 자기 주도력을 키워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일 것이다.

방법은 있는가? 자기 주도력은 쉽게 말해 자율성이다. 남의 시선이나 강요가 아닌 자신의 내재적 동기에 의해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하고 행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인간 모두의 것이지만, 환경에 따라 강화되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한다. 스스로 방 청소를 막 해보려는 아이가 ‘더러운 거 안 보이니, 대체 청소는 언제 할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들었던 빗자루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싶듯이, 인간에게는 내재적 동기가 중요하다.

곧 개학이다. 1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등교 방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주도력 함양이다. 배우는 게 너무 재미있고, 언젠가 써먹을 수 있을 것 같고, 가치와 의미도 느껴지도록 새로운 교육 환경을 만들어보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여 무한한 잠재력이 있는 온라인 교육 환경을 만들어보자. 이 실감 나는 공간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기 수준의 자율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 준다면, 그토록 우려하는 학습 격차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아이들에게 배우는 것을 즐기게끔 만드는 테크놀로지야말로 부모에게도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배움의 동기가 켜진다면 게임은 끝난 것이기 때문이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