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의 노동개혁 제안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여의도 25시/유성열]
여기엔 김 위원장이 지난해 3월 총선 전 “정부 예산의 20%를 용도 변경해서 중소기업 자영업자 근로자의 손실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종료 때까지 보전해주자”고 주장한 것, 지난해 11월 23일 “2021년도 예산을 심의할 때 3차 재난지원금을 편성하고 조속히 집행하자”고 먼저 제안하며 정부여당을 압박한 사례 등이 담겨 있다. 아직 국내 이슈로 부각되기 전인 8월 24일 “각국이 코로나 백신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다. 정부는 백신 확보 능력에 대해 솔직하게 밝혀 달라”며 백신 확보 이슈를 띄운 내용도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엔 없던 3차 재난지원금 예산을 급히 재편성한 것과 민주당이 자영업 손실 보상 등을 제도화하는 입법에 나선 점, 백신 확보 논란이 불거진 뒤 정부가 황급히 추가 확보에 나선 점 등 모두 김 위원장의 선제적 문제제기로 인한 것이란 게 국민의힘의 분석이다. 이 문건이 홍보용 기초 자료일 수 있겠지만, 김 위원장의 발언과 정부여당의 조치를 시간 순서로 따져보면 이 분석이 아주 틀리다고 할 순 없다.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문건에 주요 사례로 기록하고 싶었지만 현실화되지 못해 반영할 수 없었던 게 하나 있다. 김 위원장의 강한 호소에도 유독 정부 여당이 꿈적하지도 않은 정책 어젠다로, 지난해 10월 5일 제안한 노동개혁 문제다. 당시 김 위원장은 민주당이 중점 법안으로 추진하던 경제3법과 함께 노동법도 개편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모든 구조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가져가려면 반드시 후진적인 노사관계와 노동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의 원조인 김 위원장은 노동개혁에도 강한 소신을 갖고 있다. 그는 대기업의 지배와 운영 구조를 바꾸는 경제민주화와 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인 노동시장의 경직을 해소하는 노동개혁의 양 바퀴가 굴러가야 경제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뀐다고 믿는다. 그는 기자에게 “한국의 노조법은 이름부터 잘못됐다. 정규직 노조원한테만 혜택을 주고 비정규직은 노조에 가입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며 “노조법은 ‘노사관계법’으로 바꾸고, 회사가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주는 것을 없애야 한다. 외국에서는 일을 안 하는 노동자는 회사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기업 노조와 정규직 근로자가 오랜 기간 구축해온 기득권을 허무는 한편 비정규직,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등 고용이 불안정한 직군을 보호하는 이른바 ‘노동민주화’가 김 위원장이 그리는 노동개혁의 모습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김 위원장의 제안과 정반대로 움직였다. 노조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노동정책을 밀어붙여 ‘국제노동기구(ILO) 3법’이라 불리는 노조법, 교원노조법,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을 지난해 12월 통과시켰다. 해고자와 실직자, 5급 이상 공무원과 소방관의 노조 가입이 허용되면서 양대 노총은 세(勢)를 불릴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췄다. 반면 파업 중 대체근로 허용 같은 경영계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제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ILO 핵심협약 비준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노동개혁이란 이름의 정책이 마지막으로 추진된 것은 2015년 박근혜 정부 때다. 그마저도 한국노총의 노사정(勞使政) 합의 파기와 연이은 입법 실패로 좌초됐다. 노동개혁이 지체되는 사이 노동시장은 경직됐고 민간 일자리 창출은 더 어려워졌다. 결국 국내 실업자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9년 이후 가장 많은 157만 명까지 늘어났고, 일자리는 98만2000개나 감소했다(통계청 1월 고용동향 기준). 김 위원장의 노동개혁 제안을 지금이라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성열 정치부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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