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칼럼]시인 김수영 탄생 100년을 기억하며
[경향신문]
사회학을 공부해온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인은 김수영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민주화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이들은 김수영으로부터 결코 작지 않은 감성적·정신적 세례를 받았다. 바로 올해는 김수영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김수영은 1921년 11월27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김수영의 문학적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나의 전공을 넘어서는 일이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자유의 지식인’으로서의 김수영이다. 김수영은 자유주의자다. 스스로 밝혔듯 김수영은 우파나 좌파가 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의 분방한 상상력과 예민한 자의식은 부국강병을 중시하는 우파나 사회혁명을 강조하는 좌파와는 태생적으로 어울리기 어려웠다. 자신의 사회적 활동을 펼쳤던 1945년 광복에서 1960년대 후반까지 김수영은 우리 지성사에서 이채로운 존재였다.
사회학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김수영의 자유주의가 개인적 영역의 반성에 머문 게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성찰로 진화해 갔다는 점이다. “1950년 7월 이후에 (…) / 이 나라의 비좁은 산맥 위에 자태”를 보인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 -자유 / -비애”라고 그는 <헬리콥터>(1955)에서 노래했다. 헬리콥터로 상징되는 서구 문명의 ‘자유’에 열광했지만, 그 자유의 다른 이름은 ‘비애’였다. 서구적 이상과 한국적 현실 간의 거리에서 그가 자각한 것은 자유의 구속이었다.
이 자유의 구속이라는 심장에 김수영은 화살을 겨눴다. 그 화살의 하나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였다. “한번 정정당당하게 /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라는 그의 독백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향한 중단 없는 성찰을 요구한 것이었다.
김수영의 현실적 자유주의의 절정은 그의 대표작인 <풀>(1968)이었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더 빨리 울’지만, 풀은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나고 먼저 웃는다’. 풀은 개인 또는 민중일 수 있다. 또, 너인 동시에 나일 수 있다. 바람의 구속을 거부하고 풀의 자유를 노래한, 표현의 자유와 이를 위한 정치적 자유를 옹호한, 우리 지성사에서 관념적 자유주의를 현실적 자유주의로 하강시킨 김수영은 1968년 6월16일 안타깝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두말할 필요 없이,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근대사회를 이끌어온 정치·사회적 이념이다. 자유주의는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개인의 자유란 자신의 생각과 생활을 스스로 지배하는 ‘실존적 주권’의 획득을 의미한다.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그리고 양심의 자유를 주장함으로써 현대 자유주의의 기초를 세웠다.
2020년대를 시작한 현재, 이러한 자유주의의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중적이다. 먼저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표현의 자유 등 정치·문화적 자유는 크게 확장했다. 그러나 동시에 포퓰리즘의 부상에서 볼 수 있듯, 이른바 온라인 집단주의는 개인적 자유주의를 위축시켰다. 정치학자 얀 베르너-뮐러가 지적하듯,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서의 포퓰리즘은 언제든지 다원적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 미국 트럼프주의는 그 단적인 사례다. 나아가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팬데믹은 개인의 사생활 보호라는 자유주의의 고전적 영역을 공동체의 안전과의 조화라는 새로운 시험대 위에 세워두고 있다.
경제·사회적 자유가 처한 상황도 주목할 만하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누구나 시장에서 상품과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자유의 시대가 만개했지만, 이 소비의 자유는 개인이 갖는 화폐의 규모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정치적으론 자유로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경제적으론 부자유하다는 아이러니가 오늘날 자유의 현주소라 할 수 있다.
김수영의 사유와 실천이 물론 완벽하다고 볼 순 없다. 그의 시와 평론 역시 1950년대와 60년대라는 시대적 조건과 구속 아래 놓아두고 평가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 현대 사상사에서 빈곤했던 자유주의에 김수영이 힘찬 숨결을 불어넣었다는 점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말했듯, “김수영의 시적 주제는 자유다. (…) 그의 시가 노래한다고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절규한다.” 김수영의 자유와 한국의 자유주의가 놓인 자리와 가야 할 길을 성찰하는 1년이 되길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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