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김진숙만 빼고, 세월호만 빼고
[경향신문]
부산에서 걷기 시작한 여성노동자 김진숙이 청와대에 닿는 날이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로 삭발을 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보였다. 세월호 활동에서 멀어진 지 좀 됐지만 2014년 같이 살다시피 하며 함께 싸운 동지들이라 늘 애틋하다. 인사를 나누며 안식년이 끝난다고 했더니 한 아빠가 넌지시 웃으며 말했다. “다시 활동해야지.” 나도 능청을 떨며 답했다. “그래야죠! 세월호만 빼고.” 입 밖으로 나온 말에 아차 싶었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도로를 막아선 경찰을 보며 두 날의 기억이 엇갈리던 참이었다. 2014년 5월8일 대통령을 만나야겠다며 청와대를 향해 걷던 유가족이 밤을 지새운 자리였다. 국정조사와 감사, 수사가 권력 앞에서 멈출 때마다 그 자리에 벽이 세워졌다. 2016년 12월3일, 그 벽을 무너뜨렸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사람들과 함께 유가족이 앞장서 걸었다. 벽을 기억하며 흘리는 눈물이 슬프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다시 그 자리였다. 함께 시대를 넘어섰다는 착각은 달지도 않았는데, 뱉으려니 쓰렸다. “36년째 해고자”라는 김진숙의 시간이 아득해지며 또 다른날이 떠올랐다. 2017년 3월10일 박근혜는 파면됐으나 ‘세월호만 빼고’였다. 농담으로 할 말이 아니었다.
4년이 허투루 흐르지는 않았다. 선체조사위원회는 침몰 원인을 다각도로 검증했고 사회적참사특별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다. 참사 당일 청와대 관료들이 보고 시각을 조작했다거나 기무사가 유가족을 사찰했다는 등의 사실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알게 된 사실이 많아지는 만큼 말할 수 있는 진실이 두터워지지는 않았다. 퍼즐 조각을 많이 찾아낸들 그림이 완성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퍼즐 조각은 나왔다. 엉뚱한 자리에 붙어 진실이 흐려졌을 뿐이다. 선장과 선원, 청해진해운의 죄가 정부의 잘못을 가린 식이다. 그림을 맞추려면 한번은 판을 흔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림판은 그대로였다. 새로 찾은 조각들은 자리를 못 찾아 뒤죽박죽 흩어졌다. 조각 하나씩 법의 심판대에 세우다 보니 정의도 미끄러졌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죄가 선장과 선원에게는 있는데 대통령에게는 없단다. 면죄 받은 조각들을 이어붙인들 정의가 그려질 리 없다.
안절부절못하다가 헤어지기 전 찾아가 사과했을 때, 그는 다시 웃었다. “그걸 진담으로 들었겠어요? 왜 그리 소심해졌어?” 그제야 쪼그라든 내 마음이 보였다. 김진숙을 빼고도 ‘노동 존중’ 명패를 달고, 세월호를 빼고도 ‘생명과 안전’을 되뇌는 시대가 저들끼리 가 버릴까, 나는 지레 두려웠나 보다.
정의의 한가운데를 떠난 적 없는 사람들은 웃을 줄 알았다. 김진숙만 빼고, 세월호만 빼고 넘어가려는 시대를 부여잡고 우리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누구도 빼지 않는 시대를 지키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새로운 시대의 그림에 김진숙의 자리도 있느냐 묻는 게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자리에 김진숙이, 죽어간 이들이, 비정규직이, 차별당하는 사람들이 있냐는 외침이었다. 없다면, 민주주의도 없다.
싸우는 사람들은 그림을 두 번 그린다. 자신이 겪은 부정의의 시대와 자신이 만들 정의의 시대를. 그래서 싸우는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한 시대를 들어 옮기는 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주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무겁고, 함께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거뿐해진다. 해경 간부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죄로 뒤늦게 기소되었는데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오늘은 울겠지만 내일은 웃고 싶다.
김진숙의 오랜 구호가, 나는 꼭 뒤집힌 순서대로 어렵다. 투쟁, 함께, 끝까지, 웃으면서. 나도 그 웃음을 배울 수 있을까. 우선은 김진숙을 따라 소리내 본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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