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서 난투극 벌인 중국·인도, 이번엔 '공짜 백신' 뿌리기 전쟁
지난 7일 오후 4시(현지 시각) 캄보디아 프놈펜 국제공항에 중국의 수송기 한 대가 착륙했다. 여기엔 중국의 무상 지원 코로나 백신 60만회분이 실려 있었다. 공항에서 열린 백신 전달식엔 훈센 총리를 비롯, 캄보디아 고위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훈센 총리는 백신에 손을 얹고 사진을 찍으면서 “중국에 감사한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스리랑카 콜롬보 국제공항엔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이 인도발(發) 비행기를 마중 나왔다. 인도가 제공한 무상 백신 50만회분을 실은 비행기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관대함을 베풀어준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국민들께 감사한다”고 했다.
남아시아 맹주(盟主) 자리를 놓고 겨루는 중국과 인도가 최근 주변국을 상대로 치열한 코로나 백신 지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 세계가 백신 부족을 호소하는 가운데 백신 무상 지원을 외교적 영향력 확대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기선은 중국이 잡았다. 작년 8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개발 백신을 개도국에 우선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후속 작업이 늦어진 사이 인도가 치고 나갔다. 인도는 지난달 중순 이웃 부탄에 15만회분 지원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방글라데시(200만), 미얀마(170만), 네팔(100만) 등 남아시아 주변 6국에 총 545만회분의 백신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달 들어선 중국이 반격에 나섰다. 지난 1일 파키스탄에 백신 50만회분을 준 데 이어 캄보디아(60만), 라오스(30만) 등 4국에 백신을 공짜로 나눠줬다.
양국은 남아시아를 넘어 중동·아프리카 등 제3세계 저개발국에도 백신을 지원하고 있다. 인도는 백신 지원 명단에 아프가니스탄과 오만 등을 추가했고, 중국은 짐바브웨와 적도 기니 등에 대한 백신 원조에 나섰다. 인도 일간 힌두스탄타임스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오는 3월 말까지 전 세계 60개 개도국에 1억6000만회분을 공급할 방침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향후 네팔·필리핀 등 50여 개도국에 백신을 원조하겠다”고 했다.
이런 백신 지원 경쟁엔 과거 양국 간 갈등 역사와 라이벌 의식이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양국은 제3세계 주도권을 놓고 기 싸움을 벌였다. 1960년대엔 국경 지역을 놓고 전쟁까지 치렀고, 이후 계속 무력 충돌을 빚고 있다. 작년 6월 양국 군인들이 히말라야산맥 국경 분쟁 지역에서 몽둥이와 돌을 들고 싸우기도 했다.
중국이 스리랑카 등 인도 남쪽 턱밑에 있는 나라들을 포섭해 인도를 에워싸는 ‘진주 목걸이’ 전략을 최근 더욱 강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 전략은 중국이 중동~남중국해를 따라 투자·개발한 거점 항구를 이으면 진주 목걸이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이런 상황을 그냥 지켜보기 어려운 입장인 인도가 백신을 카드로 들고 나온 측면이 있다.
두 나라가 백신을 제공하는 양상은 다르다. 중국은 국영 제약사인 시노팜이 만든 백신을 내세워 무상 지원에 나서고 있다. 반면, 인도는 글로벌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 개발 백신을 자국 제조 시설에서 대량으로 생산해 비축한 물량을 활용하고 있다. 인도는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생산 계약을 맺을 때, 단순 위탁 생산이 아니라 제조사가 일정 물량을 자체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기술 이전 방식으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덕분에 일정 물량을 비축할 수 있었고, 이 백신에 ‘코비실드’라는 자체 이름을 붙여 주변국에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인도가 선진국 제약사와 이런 방식의 백신 생산 계약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제약 생산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인도는 1960년대까진 의약품 수요의 85%를 수입에 의존할 정도로 제약 산업이 열악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자국 제약사에 유리하게 특허법을 개정하고, 투자를 확대하면서 제약 산업이 크게 성장했다.
인도의 투자 유치 전담 기관 ‘인베스트 인디아’에 따르면 현재 인도의 의약품 제조 시설은 1만500여곳, 제약사는 8000여곳에 달한다. 제약사가 5200여곳인 중국을 앞선다.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제조 시설만 600여곳으로, 미국을 제외한 나라 중 가장 많다.
현재까지는 인도가 중국보다 더 많은 나라에 코로나 백신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금은 ‘백신 외교'에서 인도가 약간 앞섰지만, 중국이 뒷심을 발휘하면서 양국 경쟁은 더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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