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기 두뇌' 시스템반도체 품귀 아우성 "삼성·TSMC 쳐다만 보다간.."
새해 벽두부터 글로벌 시장에 반도체 전쟁이 발발할 조짐이다. 세계 각국에서 품귀 현상까지 빚어진 반도체 분야에 대한 투자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기존 컴퓨터(PC)나 스마트폰을 포함한 정보기술(IT) 분야에 이어 자동차와 자율주행 인프라 등으로 확대된 반도체 수요 폭증의 분위기에 편승하면서다. 각국에선 최첨단 기술 확보를 위해 대대적인 쩐(錢)의 전쟁까지 예고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 판도 변화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자동차, 스마트폰, 게임... 반도체 공급난 전방위로
15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난이 심해지면서 이에 따른 여파가 자동차 산업에 이어 스마트폰, 게임 등 전자산업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 최대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는 최근 생산 차질로 올해 연간 수익이 20억달러(한화 2조3,405억원) 가량 감소할 것이란 전망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엔 스마트폰, TV 등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전력반도체(PMIC),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등의 품귀 현상이 심각하다. 주문에서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은 3~4개월로 기존보다 배 이상 늘었고, 부품 가격도 20%씩 뛰었다. 미국의 애플은 최근 "맥북과 아이패드, 아이폰12 프로 모두 공급 부족 상태"라며 "반도체 부품 공급이 부족해 생산량을 늘리는데 제약이 있다"고 전했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차기 퀄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일 진행된 작년 실적 설명회에서 "반도체 부품 부족 사태는 하반기나 돼야 나아질 것"이라고 했는데, 이후 시장에선 퀄컴이 부품 부족으로 스마트폰칩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면서 주가가 10%(2월2~12일)나 빠졌다.
왜 부족하나...TSMC와 삼성전자만 생산 가능
최근 극심한 반도체 품귀 현상을 빚는 건 각종 IT 기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비롯해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차량용 반도체, 인공지능(AI) 반도체 등이 대표적이다. 설계가 복잡하고 제조에 초미세 공정이 요구된다. D램과 같은 메모리반도체처럼 대량 생산 시스템도 아니다.
문제는 현재 고객사 요구대로 이런 최첨단 반도체 생산이 가능한 제조사(파운드리)는 대만의 TSMC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는 점이다. 지난달 독일 정부와 미국의 완성차 업체들이 대만의 TSMC에 차량용 반도체 공급을 늘려달라며 읍소한 배경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공급사는 제한돼 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IT 기기 수요가 폭발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심각한 반도체 품귀 현상을 빚은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반도체 부족으로 몸살을 앓은 주요 선진국과 달리 국내 기업들의 타격은 미미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으로 갑작스럽게 IT 수요가 폭발했을 당시에도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 부품 수급에 사실상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안 상무는 "우리나라는 반도체 설계부터 공급까지 모든 공급망을 갖춘 곳이다 보니 우리나라 업체들은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 의존도 낮추자" 선진국 기술 자립
최근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잇따라 반도체 자립을 선언하면서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정책 마련을 예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최첨단 IT 기술을 바탕으로 각국이 치열하게 기술경쟁을 벌이는 이 시기에 반도체 물량 확보 실패는 치명적이란 자체 판단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EU만 해도 글로벌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10% 수준으로, 사실상 IT 부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대부분을 해외에서 조달한다.
대만이나 한국 등 반도체 생산 거점인 아시아 의존도를 낮추지 않으면 모바일 혁명 다음 단계인 차세대 모빌리티 시장에서 완전히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세계 각국에서 기술 자립을 서두르고 나선 배경이다. 최근 미국반도체산업협회는 정부에 대대적인 재정 지원을 요청하면서 "전기차 시대가 오면 반도체 수요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장기 수요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도 최근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EU 국가에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최대 500억유로(67조2,700억원)을 투자해 10나노미터(nm) 이하 초미세공정을 이용한 반도체칩 생산 거점을 마련하고, 궁극적으로 2나노 칩까지 도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업체 최고경영자들은 최근 바이든 행정부에 "반도체 제조와 연구를 위한 자금 지원을 요청한다"는 내용의 서한도 보냈다.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제조 점유율은 1990년 37%에서 현재 12%로 급감했는데, 이를 되살려 경제 성장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앞서 미 의회는 대대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업계 건의를 받아들여 지난해 세제 혜택 등을 포함해 총 220억달러를 지원하는 '칩스 포 아메리카 액트(CHIPS for America Act )'를 제정했다. 업계에선 미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바이든 정부의 대대적인 재정 인센티브가 뒤따를 것으로 전망한다.
대대적 투자 효과는 '글쎄'... "기회로 활용해야"
유럽의 반도체 기술력은 상당히 떨어진다. 세계 톱30위 안에 드는 반도체 회사는 NXP 등 3곳에 불과한데, 이 중 2곳은 차량용 반도체에 특화된 회사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 부분에선 강하지만 제조 분야에선 약한 게 사실이다. 이들 모두 대대적인 투자로 자국을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키운다는 계획이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
중국 역시 2015년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면서 10년 동안 120조원의 예산을 쏟아붓는다고 했지만, 설계 분야에서만 도약했을 뿐이다. TSMC 독주 체제인 파운드리 분야는 더 험난하다. 2018년 8월 글로벌 2위 파운드리였던 글로벌파운드리는 7나노 양산을 포기한다고 했을 정도로 후발주자가 발을 들이기 어려운 분야다. 일단 막대한 투자금을 들여 첨단 공정에 발을 들인다 해도, 대형 고객사를 잡지 못하거나 자칫 공정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그 순간 모든 투자금을 까먹게 된다. 고객사가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EU나 미국이 삼성전자와 TSMC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 기술 확보를 위해 움직이는 지금이 우리에겐 기회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익노 산업자원통상부 과장은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마라톤과 같아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데 우리는 몇 년 전부터 시스템반도체를 키우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며 "최근의 흐름을 위기로 보기보단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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