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지면 60년 군부독재..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
[경향신문]
1인 시위·9명 이하 집회
서울 등 동시다발적 개최
청년 세대 참여도 잇따라
‘국제사회 적극 개입’ 촉구
“2021년에 쿠데타라니… 그저 멍했어요.” 15일 윙라이(49)는 2주일 전 고국 미얀마에서 들려온 군부 쿠데타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심정을 이같이 말했다. 28년 전 정치적 핍박으로 미얀마를 떠나 한국에 정착해야 했던 그는 자신이 겪은 민주화운동의 기억도 동시에 떠올렸다. 멍했던 머릿속은 정리됐고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그는 지난 3일부터 서울 성동구에 있는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으로 매일 항의 시위를 나갔다.
군부 쿠데타 발발 15일차인 이날도 미얀마 현지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간 가운데 그곳으로부터 3500㎞ 떨어진 한국에서도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국내에 체류 중인 미얀마인들은 1988년 자국 내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4050 세대는 물론 그 이후에 태어난 2030 청년들까지 한목소리로 ‘군부독재 타도’를 외쳤다. 이들은 서울, 인천, 대구, 제주 등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1인 시위와 9명 이하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설연휴에도 멈추지 않았다. 25년 전 한국으로 망명한 소모뚜(46)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켜야 해 한 번에 9명씩 10팀이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곳곳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모뚜는 이번 시위를 ‘마지막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1988년 민주화운동에도 불구하고 민주정부 수립이 무산된 기억으로 인해 그에겐 “지면 안 된다”는 마음이 생겼다. 절실한 마음은 돈으로도 모이고 있다. 최근 국내 미얀마 커뮤니티에서 시작한 ‘반독재시위대 지지 후원금 운동’에는 벌써 1억1200만원가량이 모였다. 이 돈은 미얀마 현지에서 총파업에 동참하는 공무원들에게 전달된다.
윙라이는 “1988년에는 어쩔 수 없이 넘어갔지만 이번 세대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시시각각 현지 상황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디지털 수단도 마련돼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 현지 미얀마 청년들은 군부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고발하고 있다.
청년세대의 참여는 국내에서도 뜨겁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수라빼아웅(24)은 최근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에서 열린 항의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비록 외국에 나와 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나갔다”며 “미얀마에 있었으면 평화시위에 참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어 강사로 활동 중인 찬찬(32)은 “나 또한 군부독재의 압박 아래 태어나 생활한 사람”이라며 “이번에 지면 50~60년 (군부독재가)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 아니면 도’라는 각오로 싸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기술 활용에 능한 세대답게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영상을 올려 현지 상황을 알리고 있다.
국내 미얀마인들 상당수는 군부세력의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다고 의심한다고 했다. 소모뚜는 “그간 주한 미얀마대사관이었던 시위 장소를 주한 중국대사관 앞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도 촉구했다. 소모뚜는 “미얀마 사태는 단순히 미얀마만의 일이 아니다”라면서 “코로나19를 한국의 K방역만으로 물리칠 수 없듯 전 세계 민주주의와 평화는 함께 안전해야만 만들 수 있다. 미얀마의 평화를 세계의 평화로 여기는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의 보다 많은 관심을 촉구했다. 한국 정부는 쿠데타 이튿날인 지난 2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지난 총선에서 표명된 민주주의를 향한 미얀마 국민들의 열망을 존중한다는 점을 재확인한다”며 쿠데타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
소모뚜는 “한국과 미얀마는 군부독재 경험부터 민주항쟁,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까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한국 정부와 시민들의 더 많은 관심을 기대했다.
미얀마인들의 항의 시위에 연대하는 국내 시민단체들의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공동행동’ 등 70개 시민단체는 지난 2일 긴급성명을 내고 미얀마 군부에 민간정부로의 정권 이양을 촉구했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은 “미얀마가 군부독재를 겪은 뒤 민주화를 이행해오는 과정에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민지·오경민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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