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인연들 추모 행렬 이어져
[경향신문]
15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백기완 선생 빈소에는 1980년대 엄혹한 군사정권에 맞서 함께 투쟁했던 동료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김제균씨(53)는 “30여년 전 대선 후보였을 때 (전남) 순천시에 내려오셨다. 그분같이 패기 있게 살지 못한 게 한이다. 젊은이들에게 통일에 대한 열망도 심어주셨다”고 말했다. 김미숙씨(57)는 “군중 속에서 화장실에 가는 게 폐를 끼친다면서 (박근혜 탄핵 요구) 촛불집회 하루 전부터 물을 안 드시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A씨(55)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때 그리고 1992년 대선 때의 선생님이 기억나서 왔다”고 말했다. 함께 대통령 선거 운동을 한 적이 있다는 B씨(50)도 “학생들과 국밥 한 그릇 하면서 환하게 웃으시는 소탈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유족은 고인의 뜻을 고려해 빈소에 조화를 받지 않았다. 양기환 장례위원회 대변인은 “조화를 받지 않는 것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면서 “마음으로 보내면 되지 조화를 거창하게 쫙 갖다가 위세를 떨치는 것도 아니고 탐탁하게 생각하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빈소에는 영정 외에도 대형 흑백사진 2장이 함께 놓였다. 노순택 사진작가는 “살아생전 무엇을 외쳤는지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 불끈 쥔 주먹과 양팔을 펼친 모습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병상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김진숙 힘내라” “노나메기!!!”라는 글귀를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유족은 전했다. 백 선생의 딸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아버님께서는 노동 현장에서 싸우다 죽겠다고 병상에 넣지 말라고 하셨는데 차마 그럴 수 없었다”면서 “평소 말씀하신 노나메기 큰 세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빈소를 찾은 고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백기완 선생님 같은 분이 또 계실까 싶어 많이 아쉽고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백기완 선생님이 용균이 사고 후에 몸도 안 좋으신데 부축을 받으면서 빈소에 오셨다. 그때 처음 뵀는데 연로하신 분이 용균이에게 절을 하는 것을 보고 감격하고 속상하고 또 어쩔 줄을 몰랐다”며 “그런 분이 계셔서 민주화운동 같은 일에 기댈 언덕을 갖고 살았는데 이제는 누가 그런 일에 나서주실까. 여러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장례는 민주노총 등 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으로 엄수된다. 5일장을 한 뒤 19일 오전 8시 발인한다. 이후 운구행렬은 고인이 사무실로 썼던 서울 종로구 통일문제연구소를 들른 뒤 대학로 노제, 서울시청 앞 영결식에 이어 장지인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으로 이동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애도의 뜻을 표했다.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는 “ ‘심상정이, 비틀거리지 말고 똑바로 가. 이 썩어 문드러진 세상, 뒤집어 엎어버리란 말이야’라는 호령이 귓전을 때리는 것 같다. 그 빈자리가 몹시 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1982년 서울 명동에서 경찰버스 10여대가 대기하는 가운데 고인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고 밝힌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백 선생은 ‘공해란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가족의 삶을 파괴하고, 마을 공동체를 파괴한다’고 정의하셨다”며 “편히 잠드세요”라고 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그 치열했던 삶은 ‘님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에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등한 세상 또한 고인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진정한 진보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지금도 ‘어영차 지고 일어나는 대지의 싹’처럼 생명의 존엄,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일깨워주실 듯하다”고 말했다.
박채영·곽희양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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