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8시반에 노트북 강제 종료.. "어느 나라·도시서 일하든 상관 않겠다"
기업들, 매뉴얼 만들어 피로 줄이기
구글은 매주 화요일에 ‘노 테크 나이트(No Tech Night)’를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화요일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스마트폰·컴퓨터 등 전자 기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구글 직원들은 이 시간 동안 업무에 대한 부담 없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 장기화로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지자 직원 복지 차원에서 마련한 제도다. 구글은 지난해 이 제도를 포함해 재택근무에 필요한 매뉴얼을 만들어 전 세계 직원 13만 명에게 배포했다. 로라 메이 마틴 구글 생산성 총괄 책임자는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재택근무가 일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집에서도 생산성을 높일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기업들이 일상이 된 재택근무 정착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까지 많은 기업은 팬데믹(대유행) 방역 차원에서 원격 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병행했지만, 코로나 발생 후 1년이 지난 지금 상당수 기업이 재택 근무를 정식 근무 체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트위터 등 미국 테크 기업들이 코로나 이후에도 원격 근무를 유지하기로 했고, 국내 기업들도 재택근무 비중을 늘리고 있다.
◇밤 되면 회사 PC 강제 종료, 세계 어디든 근무
기업들은 재택근무 도입 이후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근무 시간 연장'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메신저·이메일을 통해 수시로 업무 지시가 가능해지면서 업무 시각 후 초과 근무가 늘었다는 불만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 인재 파견 업체 파소나는 재택근무 사원에게 대여한 업무용 노트북 PC를 오후 8시 30분이 되면 자동으로 강제 종료되도록 설정했다. 일본 헬스케어 업체 러플은 근무시간 이후 PC를 켜면 화면에 경고 알람이 뜨도록 했다.
근무 지역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는 기업도 늘고 있다. 세계 최대 음원 서비스 업체 스포티파이는 지난 12일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든 근무가 가능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스포티파이는 본사가 스웨덴에 있지만, 영국·프랑스 등에 거주하면서 원격으로 일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부동산 정보 제공 업체 직방은 최근 오프라인 출근을 없애고 전 직원 200명이 원하는 장소에서 근무하도록 했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인력이 대폭 줄면서 기업의 본사 규모도 줄어드는 추세다. 미국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업체 세일즈포스는 샌프란시스코 61층 본사 건물을 비롯해 주요 도시의 사무실을 축소하기로 했다. 일본 전자 업체 후지쓰는 지난달 배속지(소속 근무지) 외 지역에 거주하면서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앞으로 3년에 걸쳐 일본 내 사무실 면적을 절반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다.
직원들의 재택근무 적응을 돕기 위한 지원 방안도 나오고 있다. 게임 업체 넥슨은 원격 근무로 교류가 뜸해진 직원들을 위해 매달 부서별 소식을 담은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게임 기업 컴투스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임직원을 대상으로 ‘힐링 오피스 요가’ ‘꽃 리스 만들기’ 등 온라인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사회문제 해결
재택근무는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여줄 뿐 아니라 사회문제를 해결해주는 순기능도 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에선 지방이나 해외 근무 때 가족을 동반하지 않는 단신 부임이 가정 불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는데, 코로나 이후 재택 근무가 확산하면서 이 문제가 크게 줄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배우자가 전근을 가더라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아도 돼 기업들의 인재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일각에선 재택근무가 기업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IT 기술 발달로 상당수 업무를 비대면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지만, 대면 업무보다 직원·부서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 한 관계자는 “적지 않은 업무가 직접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재택근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한 직원은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개인에 대한 성과 평가가 더 냉정해질 수 있고 자칫 유휴 인력에 대한 구조 조정을 부추기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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