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명예도 이름도..'민중의 벗' 떠나다

조윤하 기자 2021. 2. 1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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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민주화운동과 통일, 노동운동에 평생을 쏟아온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오늘(15일) 향년 89세로 영면했습니다.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꿈꾸며 마지막까지 목소리를 높였던 백 선생의 삶을 조윤하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기자>

백기완 선생의 삶은 부당한 기득권과의 치열한 투쟁 자체였습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운동에 참여한 뒤 독재 정권에 앞장서 맞섰습니다.

1974년 유신 반대 서명 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습니다.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1987년) : 전 국민에 대한 고문과 폭력으로만 정권이 유지하는 겁니다. (저는) 군사 독재 정권을 반대하는 데 앞장을 섰죠.]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대통령 선거에 재야 후보로 나서기도 했지만, 김영삼, 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습니다.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1987년) : 이것이 오늘의 애국자의 길이라는 것을 믿기에, 세월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을 떠나야 합니다.]

민주화운동 1세대인 백 선생은 최근까지도 해고 노동자와 비정규직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2019년) : 내 첫 마디가, 용균이는 죽은 게 아니다.]

백 선생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투병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한 그를 위해 여야 모두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박용진/더불어민주당 의원 : 92년 대통령 선거에 백기완 선생님 선거 운동원이었던 게 큰 영광으로 기억되는 사람이고요. 젊은 사람들 용기 잃지 말라고 격려하셨던 (분입니다.)]

그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마지막도 민중을 위해 살았던 한결같은 삶 그대로였습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와 36년간 복직하지 못한 김진숙 씨 '힘내라'가 그가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 같은 글이었습니다.

(영상취재 : 김용우, 영상편집 : 하성원)   

조윤하 기자hah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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