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북한에 가고싶다 3번 얘기했다..北도 호응했지만 '무산'

장용석 기자 2021. 2. 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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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만 대사 "2018년말~19년초 논의 활발" 막전막후 소개
"북한 외교관도 가톨릭 자선단체 행사에 '이례적' 참석"
프란치스코 교황 <자료사진> © AFP=뉴스1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지난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북 의사 표명에 북한이 호응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지만, 이듬해 2월 북미정상간 '하노이 노딜'의 영향으로 무산된 과정에 대한 증언이 나왔다.

이백만 전 교황청대사는 이달 10일과 14일 '피렌체의 식탁'에 기고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할'이란 글에서 "2018년 10월18일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 면담부터 4개월여 간 (교황 방북에 관한) 교황청의 물밑 움직임이 숨 가쁘게 진행됐다. 2018년 말~19년 초 논의가 활발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의사는 문 대통령이 당시 교황 알현 뒤 "난 (북한에) 갈 준비가 돼 있다"(sono disponibile)는 교황의 발언을 전하면서 처음 언론에 보도됐다. 문 대통령은 이때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로부터의 방북 요청을 교황에게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대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을 통해 교황의 방북 의사가 공개된 뒤 교황청 외교부 내 '중국팀'에선 곧바로 그 "후속조치" 준비에 나섰던 상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기만 하면 당장 실무협상에 착수할 요량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바티칸과 평양의 협상실무자들이 직접 접촉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이듬해 2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가톨릭 자선단체 '산테지디오' 창립 제51주년 기념 리셉션에 '이례적으로' 김천 당시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대리 등 북측 외교관들이 참석, 교황의 방북 의사 표명 뒤 북한 측으로부터도 전과 다른 모습들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이 전 대사는 김 대사대리 등의 산테지디오 행사 참석에 대해 "바티칸 외교가에선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8년 10월18일 교황청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AFP=뉴스1

산테지디오는 그간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지원 등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해온 단체로서 2018년 12월엔 북한 당국으로부터 평양사무소 설치를 제안받기도 했다.

이 전 대사에 따르면, 당시 로마에는 한반도 평화와 냉전체제 종식을 위해 교황의 북한 방문이 절실하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지만, 교황의 방북이 시기상조라는 신중론 또한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전 대사는 교황이 2019년 초에 북한 방문을 놓고 주요 참모들과 토론을 했고 추진론과 신중론이 활발히 전개됐지만, 교황이 "난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 준비를 잘하길 바란다"는 말로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는 얘기를 교황청 관계자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해 2월27~28일 이틀 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간의 두 번째 정상회담은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대상·방식과 그에 따른 미국 측의 보상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결렬됐고, 이 때문에 모처럼 조성됐던 북한과의 대화 무드도 소강국면에 이르고 말았다.

이와 관련 이 전 대사는 "교황의 방북 논의도 '하노이 노딜'의 충격파를 넘지 못하고 물속 깊이 잠기고 말았다"고 전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선단체들의 (대북) 인도적 지원까지 과도하게 규제했다"며 "산테지디오가 평양사무소를 설치하지 못했던 이유도 사실상 미국의 제재 때문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로마에 본부를 둔 가톨릭 자선단체 산테지디오 관계자들이 지난 2018년 12월 북한 평양을 방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오른쪽에서 세번째), 임천일 외무성 부상 등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산테지디오) © 뉴스1

그러나 교황청은 여전히 교황의 방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사는 "교황청은 김 위원장이 초청장을 보내올 경우 교황의 북한 방문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이 전 대사는 문 대통령의 교황 알현에 앞서 2018년 2월 대사 신임장 제정식 때 교황으로부터 "기회가 되면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얘길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교황은 또 이 전 대사가 작년 말 이임인사를 할 때도 '방북 의사가 지금도 유효하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라고 답했고, "한국민은 교황이 남북한을 함께 방문해 직접 축복해주기 바란다"는 말에 "나도 가고 싶다(vorrei andare)"고 재차 화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사는 2015년 12월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선언 당시에도 교황청이 물밑 중재에 나서는 등 그동안 세계사의 주요 국면 때마다 "교황청의 역할이 있었다"며 올 10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예정대로 로마에서 개최될 경우 이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향한 '외교의 큰 장'이 열릴 것 같은 예감이 있다"고 밝혔다.

ys417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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