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해경 지휘부 무죄..법원, "선장 대신 퇴선명령 어려워" (종합)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세월호 참사 당시 부실구조 책임 논란이 일었던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을 퇴선조치했다’고 교신하고 통신을 끊은 상황에서 해경이 적극적으로 승객들을 배에서 탈출하도록 지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양철한)는 15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김수현 전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등 당시 해경 지휘부 9명에게도 모두 무죄 판단했다.
다만 서무직원을 시켜 ‘목포서장 행동사항 및 지시사항’ 문건에 사고 당일 퇴선 유도조치를 한 것처럼 기재하도록 한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과 이재두 전 3009함장은 직권남용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해경이 세월호와 교신을 유지하면서 구조인력이 도착하기 전까지 상황을 파악하고 구조계획을 수립했어야 했는데도, 이를 소홀히 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이 파악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2014년 4월 16일 참사 당시 세월호와 안정적으로 교신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은 진도 해상교통관제(VTS) 센터였고, 진도VTS는 이날 오전 9시7분부터 세월호 선장과 교신하며 퇴선을 독려했다.
재판부는 “설령 김 전 청장 등이 직접 또는 진도VTS를 통해 세월호와 교신했더라도, 즉시 퇴선조치가 필요할 정도로 침몰이 임박했거나, 선장을 대신해 퇴선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결정하기는 어려웠다고 보인다”고 덧붙였다. 각급 구조본부는 각자 사용가능한 통신수단으로 세월호와 교신을 시도했고, 해경으로서는 세월호가 호출에 응답하지 않는 상황까지 예측해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구조인력이 도착한 이후에도 해경에 형사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해경으로서는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구조의무를 져버리고 탈출하거나, ‘대기하라’고 해놓고 ‘탈출 시도하라고 방송했다’는 거짓 교신을 했을 상황까지 예측하기가 어려웠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설령 해경이 세월호 선장 및 선원들과 직접 교신해 퇴선준비 등을 지시했더라도, 이들은 그 지시를 묵살하거나 탈출방송을 했다는 대답을 반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 당시 세월호 선내에는 ‘대기하라’는 방송이 계속됐을 뿐, 사고 상황을 전파하거나 대피방법을 안내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장과 선원들은 9시37분께 진도VTS에 ‘탈출할 수 있는 사람들은 탈출 시도하라고 방송했다’고 교신했고, 호출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이후 9시46분께 선원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배에서 탈출했다. 재판부는 “당시 현장 구조세력도 승객들이 단순히 선내에 잔류하고 있다는 사정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내놓은 모의실험 결과도 판결에 반영됐다. 세월호는 사고 초부터 9시 45분까지 분당 약 0.15도의 각속도로 서서히 기울다가 그 후 5분 내 분당 1.7도의 각속도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123정이 구체적인 현장상황을 보고한 시점은 9시38분~9시44분으로, 이후 10분 만에 급속하게 배가 침몰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각급 구조본부에서는 09:50경 전후로 퇴선 관련 조치를 했고, 이는 당시 피고인들이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적절하게 내려진 것으로, 세월호 침몰이 다소 늦어졌다면 많은 승객들을 구조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헬기를 퇴선을 유도하지 않았다는 부분 역시 해경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봤다. 구조헬기에는 방송장비가 없었고, 항공구조사를 선체로 내려보냈다고 하더라도 헬기와 교신가능한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선내 진입을 지시하고, 효율적인 임무수행을 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당시 항공구조세력 이 우현 갑판에서 수행한 구조작업의 난이도 등에 비춰, 일부 항공구조사 를 선체 내부에 진입시켰을 경우 우현 갑판의 승객들을 모두 구조할 수 있었을지도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해경의 잘못으로 승객이 사망했다는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가 선고됐지만, 이후 문책을 염려해 ‘폭포서장 행동사항 및 지시사항’ 문건을 허위로 작성한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 판단이 내려졌다. 사고 당일 교신내역, 3009함 항박일지 등 객관적 자료에 의하더라도 사고 발생초기부터 퇴선유도지시를 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문홍 전 서장의 범행은 해양경찰 전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며 “범행을 부인하면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어 비난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다만 30년 가까이 해경으로 성실하게 근무했고,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을 감안해 형 집행을 유예하기로 했다. 이재두 전 3009함장 역시 김문홍 전 서장의 지시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했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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