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37% "규제의 늪, 고용 축소로 대응"

한우람 2021. 2. 1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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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개 기업 설문조사
벤처 4곳중 1곳 "해외 이전 검토"

◆ 규제 늪에 빠진 한국기업 ◆

"잇단 기업규제 입법으로 한국에서 기업하기 어렵다. 국내 고용은 줄이고 아예 사업장 해외 이전을 검토하겠다." 국가 경제와 고용의 근간이 되는 국내 기업들이 바라본 기업 환경이다. 심지어 이제 막 창업에 나서 국가 미래를 이끌어야 할 벤처기업과 대기업 성장 문턱에 다다른 중견기업들마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더해준다. 국가가 잇단 규제 강화로 기업을 내쫓는 일이 현실화되기 전에 빠른 정책 전환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5일 벤처기업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최근 기업규제 강화에 대한 기업인 인식조사'를 공동으로 실시하고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설문은 지난해 말 국회 문턱을 넘은 기업규제 3법과 산업별 규제에 대한 기업 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달 실시했으며 대기업 28곳, 중견기업 28곳, 벤처기업 174곳 등 총 230개 기업이 응답했다.

설문 결과, 규제 강화로 인해 '국내 고용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는 기업이 전체 기업 중 37.3%다. 특히 벤처기업은 해당 응답비율이 40.4%로 올라갔다. '국내 사업장의 해외 이전 검토' 응답비율은 21.8%다. 벤처기업(24.0%)과 중견기업(24.5%) 응답비율이 특히 높다. 대기업들은 사업 기반이 국내에 다져 있기 때문에 쉽사리 이전하기 어려워 해당 응답비율이 9.3%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직 사업 원숙기 단계에 다다르지 않은 기업은 별 미련이 없다. 중견기업과 벤처기업 4곳 중 1곳은 언제든 한국 땅을 떠나 해외에서 사업하겠다는 것이다.

[한우람 기자]


"한국선 기업 키워봤자 규제만 늘텐데"…벤처마저 짐쌀 궁리

전경련·벤처협·중견련 조사

'CEO 처벌' 기업규제 3법 등
몸집 커질수록 이중삼중 규제
젊은 창업자들 도전의식 꺾여

중기도 "공장입지·조달 등
13개 규제 풀어달라" 호소
대기업도 절반은 "투자 축소"
국내 주요 기업들이 경영 환경 악화로 고용 축소 우려를 전한 가운데 구직자들이 15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아 실업급여 설명회를 기다리고 있다. [한주형 기자]
#석유화학 관련 중견 제조업체인 A사는 최근 미국 시장 진출을 결정하면서 국내 생산과 현지 생산이라는 선택지를 놓고 장고를 거듭했다. 국내 생산 시 수출뿐만 아니라 국내 공급 능력도 확대할 수 있었으나 결국 현지 생산을 택했다. 물론 현지 생산에 따른 관세 혜택도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 규제 강화로 높아진 노동경직성이 국내 투자가 아닌 해외 투자로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15일 A업체 관계자는 "내년과 후년에 어떻게 국내 노동정책이 변할지 예측조차 안되는 상황에서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면서 "요즘 기업인들은 본능적으로 향후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라고 토로했다.

잇단 기업규제 입법으로 기업들의 '탈한국' 분위기가 점점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국내에서 고용과 투자를 줄이는 한편 사업장의 해외 이전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같은 '탈한국' 분위기가 '벤처기업>중견기업>대기업' 순이라는 점은 자못 충격적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신성장동력 풀뿌리부터 "한국을 벗어나자"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미래세대 먹거리가 빈곤해질 조짐이 엿보이는 것이다.

이들이 참고하는 반면교사는 기업을 키운 대기업들이 규제 입법에 잇달아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기업이 커질수록 리스크가 커지는 대표 법안은 올해 초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과 최근 입법예고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다. 사망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이유를 불문하고 오너와 최고경영자(CEO)를 3년 이상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는 중대재해법은 대표 규제 입법이다. 재계 관계자는 "산업재해라는 것은 결국 확률 게임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업장이 많아질수록, 하도급이 많아질수록 어디선가 사고가 날 확률은 높아지게 마련이고 이는 대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더 황당하다. 과징금 부과 기준을 데이터 관련 사업 매출이 아닌 해당 기업 총매출액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고의, 중과실이 없는 일반 위반 행위에 대해서도 대기업에 과도한 과징금이 부과된다는 문제점을 지닌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가전 등이 주력인 국내 최대 기업 삼성전자가 '실수로'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경우조차 2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과징금이 부과되는 문제점을 지닌다는 것이다.

투명한 지배구조 정착을 위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대기업에 과도한 내부거래 규제를 부과한 공정거래법 역시 문제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개정 공정거래법은 오너 일가가 지분 20%를 보유한 회사를 통해 지분 50% 이상을 간접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도 내부거래 중 부당 내부거래의 경우 오너 일가를 형사처벌하도록 규정돼 있다. 수직계열화라는 효율성과 투명한 지배구조를 위해 만든 지주사 체제가 족쇄다. 기업을 키울 이유가 이래저래 없다.

이날 벤처기업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이 공동으로 국내 기업을 설문 조사한 결과는 이 같은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규제 강화 때문에 국내 고용을 축소하겠다는 기업은 응답 기업 중 37.3%를, 국내 투자를 축소하겠다는 기업 비중은 27.2%, 국내 사업장의 해외 이전을 검토하는 기업 비중은 21.8%에 달했다.

특히 고용 축소 의향을 내비친 벤처기업 응답 비율(40.4%)이 중견기업(26.4%)과 대기업(33.3%)보다 높았다. 국내 사업장 해외 이전을 고려하는 벤처기업(24.0%)과 중견기업(24.5%)은 대기업(9.3%)보다 두 배 많았다. 서승원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은 "최근 기업규제3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을 옥죄는 규제가 증가해 기업 환경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기업들은 기존 국내 사업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를 통째로 뽑아 해외로 들고갈 수 없다. 고용도 대놓고 줄이지 못한다. 이들은 대신 국내 투자 축소로 이에 대응하고 있다. 규제 강화 때문에 '국내 투자를 축소하겠다'는 응답 비중은 27.2%다. 대부분은 대기업에서 나왔다. 국내 투자 축소 검토를 내비친 대기업 비중은 50%로 둘 중 하나는 이를 실행에 옮길 태세다.

[한우람 기자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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