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회현동 골목길 구수한 밥 연기 다시 피어나네"
코로나로 폐업하는 골목식당
서울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것
회현동 밥집 배달 사업 시작
사회 온정에 상권도 살아나
일본 '철도역 도시락' 모델로
마을 곳곳에 도시락 만들고파
"코로나19 이후 동네 밥집이 하나하나 없어지고 있잖아요. 단순히 식당이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서울의 문화유산이 사라지고 있는 거죠. 안타까운 마음에 동네 식당 매출을 올리는 법을 모색하다 배달화 작업을 돕게 됐습니다."
회현동 도시락은 성공적이었다. 식당 열두 곳 모두 코로나19 이전으로 매출이 회복됐다. 일부는 월 매출이 500만원이나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정성이 가득한 집밥 도시락에 대한 호응이 많았다. 이 PD는 "사장님들이 더 맛있는 식사를 위해 자체적으로 메뉴 개발에 나서 더욱 고무적"이라며 "평생 김밥·떡볶이만 팔던 분식집 사장님은 장어덮밥을 개발해 히트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온정도 이어졌다. SK는 도시락을 하루 500개씩 구매해 노숙인에게 제공하기도 했고, 배달의민족은 회현동 도시락 배달을 지원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회현동 골목길에는 다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동네 식당을 살리지 못한다면, 우린 결국 공장에서 찍어낸 개성 없는 음식만 먹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어요." 따뜻한 밥 연기 하나로 동네를 살릴 수 있다는 건 그의 오래된 신념이다. 다른 문화에 개방적인 부모님의 영향이었다. 그는 "만주에서 태어나 생활하신 아버님, 일본에서 자란 어머님은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요리와 그 속에 담긴 문화를 알려 주셨다"면서 "40년 전 집에서 그라탕을 해 주신 건 우리 집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웃었다. 서울대 인류학 석사 논문으로 경기 포천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숙식을 함께 하며 이슬람의 음식 금기에 대해 쓰기도 했다. "전 세계 모든 언어의 등수가 정해질 수 없듯이, 모든 음식에도 우월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그 안에 아름다운 인간의 무늬가 각각 새겨져 있을 뿐이죠."
코로나19로 시작한 도시락 프로젝트지만, 그는 팬데믹 이후를 내다보고 있었다. 서울 모든 동네, 나아가 전국 마을 밥집의 도시락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는 "이게 단순히 골목 상권 살리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도시의 소프트웨어, 음식 문화의 기록, 일자리의 재생이 가능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 전국 철도역에서 파는 '에키벤'을 모델로 삼았다. "에키벤을 먹으려고 순례자처럼 전국을 도는 일본 식도락가가 많습니다. 대한민국 마을 곳곳을 도는 도시락 순례자들을 보는 일은 얼마나 멋질까 생각합니다. 동네 재료로, 동네 요리법으로, 동네 이야기를 먹는 것이니까요." 요리 기록가 이욱정의 꿈이 아궁이에서 알알이 익기 시작했다.
[강영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경e신문] 오늘의 프리미엄 (2월 16일)
- "황량한 회현동 골목길 구수한 밥 연기 다시 피어나네"
- 화가 변신한 배우 강리나·가수 최백호…18일부터 서울 `띠오아트`서 2인전 펼쳐
- 80세 거장 바렌보임, 내년 빈필 신년음악회 지휘봉
- 가수 씨엘, 美 TV광고 모델됐다…한국 여자 솔로 가수 최초
- 강경준, 상간남 피소…사랑꾼 이미지 타격 [MK픽] - 스타투데이
- 롯데는 어쩌다 ‘지친 거인’이 됐나 [스페셜리포트]
- “필리핀서 마약” 고백은 사실…김나정, 필로폰 양성 반응 [MK★이슈] - MK스포츠
- 이찬원, 이태원 참사에 "노래 못해요" 했다가 봉변 당했다 - 스타투데이
- 양희은·양희경 자매, 오늘(4일) 모친상 - 스타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