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뉴타운을 아느냐" 창신동 원주민이 공공재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공공 개발 바람타고 일부 주민들이 재개발 요구해 갈등
"도시재생 실패? 아파트 만능주의로 지역 가치 무시"
“우리는 목숨 걸고 반대합니다. 공공이 됐든 뭐가 됐든 뉴타운 때처럼 안 그러리란 법이 없어요.”
도심 공공개발 공급 방안이 제시된 2·4 공급대책이 나온 지 나흘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문선자 창신2동주민협의체 대표(70)는 공공이 하든 민간이 하든 전면 철거 방식의 재개발에 반대한다고 했다. 지난해 8·4 공급대책으로 공공재개발이 등장한 이후 창신동·숭인동(창신숭인) 일대에서 일부 주민들에 의해 재개발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시작됐고,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서는 야당 후보들이 잇따라 방문해 ‘도시재생은 실패했다’며 이 지역의 재개발을 약속했다. 2013년 뉴타운 지정 해제 이후 8년 만에 창신숭인에서 재개발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재개발에 반대한다는 문 대표의 말은 재개발이 대세로 굳어지는 이 과정에서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은 ‘다른 목소리’다. 도시재생 사업 중 꾸려진 창신2동 주민협의체 대표를 4년 동안 지낸 문 대표와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의 손경주 이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동네 특성 무시한 재개발 만능주의는 투기적 관점
“10억 이상 가진 사람만 창신동에 남아라, 없는 자는 다 떠나라는 것 아니냐, 결국 부자들하고 바꿔치기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문 대표에게서는 ‘주민 교체 사업’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뉴타운 사업의 그늘이 느껴졌다. 창신동과 숭인동은 2005년 3차 뉴타운 후보지로 지정된 이후 뉴타운 사업 취소 소송까지 제기하는 격렬한 반대 끝에 2013년 뉴타운 지정 해제 1호 지역이 됐다. 2014년에는 박근혜 정부가 ‘뉴타운 출구전략’으로 도입한 도시재생 선도지역 13곳 가운데 유일한 서울 지역으로 도시재생 1호이기도 하다. 동대문 의류도매시장의 배후 생산기지로 1000여 곳 이상의 봉제공장이 가내 수공업 형태로 밀집한 곳이다.
“동대문 시장 매출의 1%만 여기서 왔다갔다 해도 1500억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해요. 봉제공장은 다 서민의 일자리이기도 하고요. 주거와 산업이 공존하는 동네인데, 왜 동네가 아파트 단지처럼 편하지 않냐고 하면서 아파트로 다 바꾸자고 하는 건 부동산 시장의 관점, 그 중에서도 투기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거예요.”
창신동 토박이인 손 이사는 동네 특성을 가리지 않고 터져 나오는 재개발 요구가 ‘재개발 만능주의’, ‘아파트 만능주의’라는 투기적 성격이 있다고 지적했다. 손 이사의 부모님은 가내수공업 형태로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창신동 원주민’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2014년에 교남뉴타운 경희궁 자이 조합원 분양가가 전용 59㎡이 4억5천만원이었어요. 지금은 얼마일까요. 지하에 공장 운영하고 주인도 살고, 월세도 주는 3층 짜리 다가구를 재개발한다고 해도 추가분담금 없이 아파트 한 채 못 받아요. 투자 목적으로 작은 집 하나 갖고 있다가 추가분담금 내고 분양 이후에 시세차익 내고 팔아버릴 수 있는 투기세력한테나 재개발이 이득이지 다세대·다가구 갖고 있는 원주민들한테는 이익이 되기가 어려워요.”(손경주 이사) 창신숭인을 비롯한 대다수 뉴타운 사업이 원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친 것도 원주민이 재정착을 할 수 없는 이같은 구조 때문이었다.
■ 원주민 감당 안 되는 재개발, 공공이 하면 다르다고?
정부가 공급대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공공 주도 재개발은 다를까. 8·4 대책의 공공재개발이나 2·4 대책의 도심 공공개발(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은 원주민과 세입자의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용적률을 크게 완화해 주택 공급물량을 몇 배수로 늘리면 재개발 수익이 늘어나 원주민들의 추가분담금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중 역세권 유형은 용적률을 700%까지 완화한다. 하지만 창신숭인 지역은 흥인지문 및 한양도성으로 인한 문화재 규제를 받아 사업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또 용적률 규제 완화로 사업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단층 주택 밀집지가 아니라 3~4층 수준의 다가구·다세대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뉴타운 사업 당시에도 창신 9·10 구역과 숭인1·2구역 등 4개 구역은 신규 공급 물량(5664호)이 총 거주 가구 수(5303호)보다 겨우 300여 호 많은 수준에 그쳤다. 손 이사는 공공재개발이나 도심 공공개발 역시 창신숭인 같은 지역 말고 고밀 개발이 가능한 일부 지역이 해당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창신숭인 지역은 현재 주민들이 부담가능한 주택으로 경제적 균형을 이루고 있는 건데, 재개발로 더 비싼 주택을 공급하면 많은 사람들이 부담을 못하고 쫓겨나는 게 당연한 거예요. 공공이 그걸 어떻게 다 감당해주나요. 일부 주민들이 공공이 하면 다 해결될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손경주 이사) ■ 재개발 바람 불면서 도시재생이 역풍 맞아
공공재개발이나 도심 공공개발 모두 토지소유주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최종 시행할 수 있어 일부 주민들만의 요구로는 추진이 어렵다. 창신숭인은 2013년 자체적으로 실시한 주민 500명 대상 여론조사 결과 74.4%의 주민이 뉴타운 사업 해제에 찬성한 바 있다. 공공재개발은 주민 동의 말고도 노후도 비율, 도로 연장률, 세대 밀도 등 다른 요건도 있기 때문에 원주민·세입자 보호가 가능한 수준의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일부 지역이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공공이 주도하는 ‘재개발 바람’이 부는 동안 곳곳에서 재개발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도심 공공개발(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토지소유주 10%의 동의만으로 신청해 사업구역으로 선정될 수 있다. 선정 이후 1년 내 3분의 2 동의를 받지 못하면 구역이 해제되지만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 내 갈등은 불가피하다.
창신숭인은 정부가 ‘도시재생 지역은 공공재개발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밝혔는데도 갈등이 생겼다. 공공재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2015~2018년 4년 동안 추진해온 ‘도시재생 사업은 실패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지난 1월25일 찾은 창신동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공공재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이 주장하는 ‘빈집이 많다’는 주장에 대해 “코로나 때문이지 도시재생 때문이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찬반 갈등에 연관되고 싶지 않다. 부동산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4년 동안 창신2동 주민협의체 대표로 선출돼 도시재생에 참여해 온 문 대표는 지난 4년이 부정되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실패고 성공이고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겨우 4년 지났고 도시재생은 이제 시작이예요. 재개발 주장하시는 분들은 결국 자기 집 고쳐달라는 얘긴데, 개인 재산인데 정부가 왜 돈 들여서 고쳐줍니까. 관에서는 도로 놓고, 상하수도 고치고, 자기 집은 자기 돈 들여서 고쳐야죠. 내 집에, 내 재산에 뭘 해줘야만 도시재생 잘 됐다 할 겁니까.”(문선자 대표)
■ 벽화 그리기가 도시재생 전부?…“방치된 지역에 공공 투자”
공공재개발을 요구하는 주민들은 도시재생으로 천억원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됐지만 달라진 게 없다고 주장한다. 도시재생 선도지역 사업으로 지원받은 200억 원과 연계사업 606억 원을 더한 806억원 중 대다수는 개인 주택 정비가 아니라 공공도서관 및 주차장 건립(318억 원), 노후 하수관 정비(238억 원), 주민공동이용시설 조성(81억 원) 등 개인 주택 수리가 아니라 동네 기반시설 조성에 쓰였다.
“‘도시재생=벽화그리기’라는 도식이 생겼는데, 우리는 벽화그리기도 안 했어요. 뉴타운 지정되고 난 다음에 8년 동안 모든 개발행위가 제한되면서 동네가 방치됐었는데 도시재생하면서 그나마 공공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그동안 아무도 쫓겨나지 않았어요. 많은 주민들이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갑자기 ‘왜 주차장이 없냐’, ‘왜 아파트가 없냐’고 개발이 필요하다고 하는 건 너무 단순한 부동산 시장의 시각이예요.”(손경주 이사)
문 대표는 공공재개발 추진 움직임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과거 뉴타운 사업 때처럼 ‘비상대책위원회’ 개념의 단체카톡방을 만들었다고 했다. 손 이사는 도시재생협동조합이 재개발을 추진하는 주민모임인 줄 알고 취재를 하는 언론이 있다며, 도시재생에 대한 몰이해를 안타까워했다. 현장은 뉴타운의 후유증을 다시 겪고 있고, 공공이 주도하는 개발은 민간 주도 개발과 아직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글·사진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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