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ESG채권 대세라는 데..커지는 불안요소

임세원 김민경기자 why@sedaily.com 2021. 2. 1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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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열풍으로 올해 들어 국내서만 2조 이상 발행
발행 전후 기준 없고, 기업과 투자자 관리 리스크
[서울경제]

기업이 환경(녹색)과 사회, 지속가능성을 위해 발행하는 ESG 채권 붐이 연초부터 거세다. 지난해 말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가이드 라인이 나왔고 떄마침 미국에선 ESG 투자 강화를 천명한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기업의 착한 경영 정도로 여겨지던 ESG 채권 발행이 이제는 생존 수단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그러나 기반이 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 들어서만 2조 원 이상 찍어내면서 불안감도 늘고 있다. ESG채권 발행 전후 관리가 아직 부실하고, 일부 영역은 발행 기준조차 없다. 발행 기업이 ESG와 거리가 먼 사업에 뛰어들어 시장의 신뢰를 잃는가 하면 전통산업에 속한 기업은 아예 발행에서 배제되어 있다. 업계 관계자는 “ESG채권이 대세는 분명한데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기업이 발행하면서 혼란이 있다”고 전했다.

◇2020년 이후 ESG 채권 발행 내역

1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재까지 대기업과 일부 공기업이 발행한 ESG채권은 2조 3,980억 원 어치다. 유럽에 이어 미국에도 불어온 ESG 투자 바람이 불고 국내도 큰손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수요가 높아지면서 발행 기업은 계획보다 물량을 늘렸다. 업계에서는 올해 상반기까지 100개 기업이 ESG채권을 발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ESG채권은 크게 녹색과 사회적 채권 혹은 둘을 묶은 지속가능채권으로 나뉜다. 올해 들어 많이 발행한 채권 대부분은 녹색채권이다.

①발행 기준미비=녹색채권 발행이 많은 이유는 가장 발행 기준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을 통해 발행 기준을 확정했다. 반면 사회적채권과 지속가능채권은 정부나 공인된 기관의 발행기준이 없다. 신용평가사나 회계법인, 지배구조평가 기관 등이 제각각 기준을 만들어 평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념이 모호하고 일관된 발행기준이 없어 투자자는 물론 발행하려는 기업 조차 혼란한 상황이다. 물류기업인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사회적채권으로 물류 허브 시설 자동화에 투자하면 택배 노동자의 업무 환경이 좋아질 것이라는 취지로 추진했다 일부 신평사에서 인정하지 않은 게 그 예다. 정부는 올해말까지 사회적채권과 지속가능채권에 대한 기준을 정립할 계획이지만 어떤 사업이 이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업계에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②발행 후 관리 리스크=ESG 채권을 발행한 후 이와 무관한 사업을 벌일 경우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지난해 한국전력은 5,500억 원의 녹색채권 발행 직후 인도네시아의 화력발전소에 투자를 확정하면서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 연구소가 투자자 신뢰 확보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돈에는 꼬리표가 없기 때문에 기업이 ESG채권을 발행해 확보한 자금을 어떻게 쓸지 외부에서 확인할 수 없으므로, 기업 스스로 논란이 될 사업에 뛰어들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반 회사채와 달리 ESG채권은 발행 후 정기·수시평가가 의무사항이 아니다. 친환경 사업에 활용하겠다는 취지에 따라 저리로 자금을 빌려줬는데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지 파악할 제도가 미비하다는 뜻이다.

공시제도도 문제다. 지속가능보고서와 ESG채권 발행 후 사후보고서는 기업 홈페이지,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는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다. 보고서의 질과 내용도 기업마다 제각각이어서 일관된 평가가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③그들만의 리그=석탄 활용·담배 유통 등 사업 자체가 ESG 원칙과 거리가 먼 전통 산업은 사업 구조를 대대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ESG채권 발행 자체가 어렵다. 네덜란드 연기금 등 해외 연기금과 자산운용사가 한화·SK·포스코·BGF 등의 기업을 투자 배제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화는 논란이 된 집속탄 사업을 매각했고, SK그룹은 올해 들어 계열사 별로 친환경 사업을 발굴하는 등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해외 IB 관계자는 “전통 산업에 속하더라도 친환경으로 바꾸기 위해 ESG채권을 발행한다면 투자하려는 기관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발행 과정에서 일반 회사채 신용평가에 ESG 평가까지 해야 하면서 발생하는 수수료도 부담이다. 환경부는 신용평가사나 회계법인 등 공인된 평가기관에 평가를 받은 기업에는 수수료를 지원하는 방안을 올해 하반기까지 확정할 예정이다.

ESG채권의 투자 물꼬를 튼 쪽은 국민연금 등 큰 손이지만 투자 확대를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ESG 채권 평가의 일관성이 부족하고, ESG투자로 설정해 놓은 투자 영역 외에 전체 채권 투자에 ESG 요소를 반영하기 위한 벤치마크(목표 수익률 기준)설정 논의도 없다. 연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 기금위가 ESG채권의 수익률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을 반영한 벤치마크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논의 없이 투자 비중을 늘리라는 주문만 나온다”고 꼬집었다.

/임세원 김민경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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