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 제외된 백신접종..'백신 신뢰' 떨어지나
정부가 코로나19(COVID-19) 백신을 만 65세 미만부터 먼저 접종하기로 했다. 오는 26일 요양병원 등에 있는 65세 미만부터 백신 예방접종을 시작한다.
주목받은 65세 이상 고령층은 백신 접종 우선 순위에서 뺐다. 백신 유효성에 대한 추가 임상 정보 확인 뒤 접종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오는 4월에야 고령층 백신 접종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고령층에 대한 백신 접종이 지연되면서 정부의 집단면역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접종의 순서가 바뀔 뿐 올 11월 집단면역 형성 계획엔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령층 백신 접종 제외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고위험군인 고령층에 대한 백신 우선 접종이 방역에 더 효율적이란 주장도 있다. 고령층 백신 접종 제외가 오히려 백신의 신뢰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선 수차례 전문가 회의에서도 65세 이상 고령층 백신 접종에 대해 조건부 허가를 권고했다. 그만큼 정부의 고민이 깊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행계획에 따라 추진단은 우선 요양병원‧요양시설 등 고령층 집단 시설의 만 65세 미만 입원‧입소자 및 종사자를 대상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예방접종을 시작하기로 했다.
만 65세 이상 연령층은 백신의 유효성에 대한 추가 임상정보를 확인한 뒤 예방접종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 접종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추가 임상정보는 오는 3월 말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층의 경우 아무리 빨라야 오는 4월에야 백신 접종이 가능하단 의미다.
앞서 예방접종전문위원회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안전성과 면역원성이 확인됐다고 판단했다. 중증질환 및 사망 예방효과도 확인돼 중증 진행과 사망 감소라는 예방접종 목표에 부합하는 백신이라는 점을 명백히 했다.
다만 65세 이상 연령층에서 백신 효능(유효성)에 대한 통계적 유의성 입증이 부족하다고 봤다.
추진단은 코로나19 예방접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높은 접종률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고령층에 대한 백신 효능 논란이 국민과 의료인의 백신 수용성을 떨어뜨려 접종률을 낮출 우려가 있어 65세 미만 우선 접종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글을 통해 "정부는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성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65세 이상 접종 연기를 선택했지만, 이는 오히려 백신에 대한 신뢰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결국 정부의 발표는 결정을 내렸다기보다 결정을 미루고 문제를 피해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우리가 4월까지 확보한 물량의 대부분"이라며 "일관되게 백신에 대한 신뢰와 조기 접종의 필요성을 말씀드리는 입장에서 매우 아쉽다"고 전했다.
요양병원‧요양시설 입원‧입소자 및 종사자 중 만 65세 미만 27만2000여 명이 대상이다.
고위험 의료기관의 보건 의료인(35.4만명)과 코로나19 1차 대응요원(7.8만명)에 대해선 '코로나19 예방접종 계획'에 따라 오는 3월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예방접종을 시작한다.
국제백신공급기구(이하 코백스)를 통한 화이자 백신 도입 시기는 이달 말 혹은 3월 초로 예상된다. 도입 즉시 코로나19 환자 치료 의료진 5만5000여 명을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시행한다.
정은경 코로나19예방접종대응추진단장은 이날 코로나19 예방접종 계획 브리핑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호 접종 대상자는 아마 요양병원 종사가 될 것"이라며 "아직 접종 계획을 지자체별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추진단장은 또 "2~3월 백신접종 계획을 일부 조정했지만 올 11월 집단면역 형성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사실 오해가 있는데, 65세 이상 고령층에 백신 예방접종을 해도 안전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다만 효과성 입증이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식약처에서 (고령층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신중하게 하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현장) 의료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냔 말이 나오기도 했다"며 "(정부에서도) 의료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령층 접종하기는 힘드니 미룬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임상에 참여한 고령자 수가 적어 효과성 등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임상 결과가 나온 영국(2건),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임상에 따르면 고령자들에게도 면역원성이 형성됐다. 다만 임상에 참여한 고령자 수는 660명으로 전체 참여자의 7.4%에 불과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초 아스트라제네카는 고령자 약 7500명이 참여한 미국 임상 결과도 비슷한 시기에 내놓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 임상이 한달 이상 지연됐고, 고령자 참여자 수가 적은 영국, 브라질, 남아공 임상 결과가 먼저 나왔다. 통계적 근거가 부족한 탓에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웨덴·폴란드에 이어 우리나라도 고령자 접종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식약처가 지난 10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대상에 65세 이상을 포함하면서, 사용상의 주의사항에 '65세 이상의 고령자에 대한 사용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기재한 것 역시 예방접종전문위원회 결과에 영향을 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고령층에 대신 접종할 만한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도 당분간 충분한 확보가 어렵다.
1분기 고위험군부터 접종 속도를 올려 방역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한 당국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임상 3상에서 고령자 참여가 많지 않아 유효성을 평가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정부에서 정책적 결정이나 고려가 있다 하더라도 과학적 근거를 뒷받침한 신중한 결정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집단감염에 취약한 요양병원·요양시설 등 65세 이상 입소자 및 종사자들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전체 64만8855명에 이르는 해당 시설 입소자 및 종사자들 가운데 65세 미만은 27만2000여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65세 이상인 약 37만7000명은 당분간 접종을 못받게 되는 셈이다.
고령층일수록 감염 시 치명률이 높다. 집단감염 위험이 높은 요양 관련 시설 고령층에 우선 접종한다는 게 당국의 당초 목표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백신 접종 초기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대신 65세 이상 고령층에 우선 접종할 백신의 충분한 확보도 당분간 힘들 전망이다. 2~3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외에 도입되는 백신은 국제백신공급기구(COVAX facility)를 통한 화이자 백신 5만8500만명 분이 전부다. 하지만 화이자 백신은 코로나19 환자치료병원 종사자 약 5만5000여명에 우선 접종된다. 1분기까지 65세 이상은 백신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게 된 셈이다.
이 같은 상황은 우리와 같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65세 이상 접종을 유보한 독일과 프랑스, 스웨덴 등과도 차이가 있다. 이들 유럽국은 화이자와 모더나 등 백신을 상대적으로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 화이자 6억도즈, 모더나 1억6000만도즈 등을 선구매한 상태고 이미 화이자 백신 등은 접종을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추진단은 "고령층에 대한 백신 효능 논란은 국민과 의료인의 백신 수용성을 떨어뜨려 접종률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은경 추진단장은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소중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국민 모두의 참여가 필요하다"며 "집단면역 형성을 위해 접종순서에 해당하는 분은 예방접종에 적극 참여해주실 것으로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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