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동맹의 함정' 빠지나..미국과 다른 목소리 어려워져
韓 '쿼드' 문제 등 전략적 모호성 유지하다 입지 약화 우려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올 1월 출범한 조 바이든 미국 신임 행정부가 '동맹 강화'를 외교안보전략의 핵심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으면서 우리 정부가 자칫 '동맹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지나친 증액 요구로 2년째 제 자리 걸음만 했던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경우 바이든 정부 출범과 함께 일단 숨통이 트인 듯하지만, 대북정책 방향 등 미 정부의 이른바 인도·태평양 전략을 놓고는 우리의 '특수성'을 배려하기보다 일본을 포함한 다른 동맹국들과 '한목소리'를 내줄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이 같은 기류는 지난 4일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 전화통화에서부터 감지되기 시작됐다. 청와대에 따르면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한국 측의 노력을 평가한다"면서도 "한국과의 '같은 입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12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동맹 강화" 공약과 함께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미 국무부가 밝혔다.
◇바이든 정부 "혼자서 중국 상대하기 힘들다"…동맹국들에 지원 요청
바이든 정부가 이처럼 우리나라와 일본을 상대로 '동맹국 간 협력'을 얘기하는 배경엔 기본적으로 "미국 혼자서 중국을 상대하기가 버겁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중국은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큰 개발도상국"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실질적으론 2000년대 중반 이후 고도 경제성장에 힘입어 세계 1위 경제대국 미국을 바짝 뒤쫓는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올랐다. 게다가 중국은 이 같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적으로나 정치·외교적으로도 아시아·유럽·아프리카 등 각국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미국이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의 고도성장에 제동을 걸었을 당시 영국·프랑스·독일(당시 서독) 등 유럽 동맹국들의 지원을 이끌어낸 것과 유사하게, 앞으로 중국을 상대하는 과정에서도 한국·일본·호주·인도 등 인도·태평양 역내 동맹국 및 우방국을 적극 활용하려 들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 일본은 '경제' 카드만으로도 독주를 막을 수 있었으나, 지금 중국에겐 그 이상의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 정부는 중국의 기세를 꺾고자 트럼프 행정부 시절 2년 넘게 '무역전쟁'을 벌였으나, 그 여파로 미국 경제도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韓 '한중관계도 고려해야…' 현실적 이유로 전략적 모호성 유지
우리 정부는 "한미관계뿐만 아니라 한중관계도 고려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에 '미국발(發) 동맹 강화' 기조에 적극적으로 가세하지 못하는 모습이 읽힌다.
미 정부가 중국 견제를 주목적으로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등 4개국) 협의체 확대를 추진 중인 데 대해 외교부 정 장관이 Δ투명성과 Δ개방성 Δ포용성, 그리고 Δ국제규범 준수 등 4개 조건이 충족돼야 "적극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사실이 대표적이다.
강경화 전 장관이 작년 9월 쿼드와 관련해 "다른 나라의 국익을 배제하는 건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고 했던 데 비하면 정 장관 발언은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중국보다 미국과의 관계를 좀 더 고려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모호하긴 마찬가지'란 평가도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도 정 장관의 해당 발언에 대해 "우리 정부의 기본 원칙을 제시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미국을 위시한 쿼드 4개국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연이은 합동군사훈련 등을 통해 사실상 '같은'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전략적 모호성만 강조하다간 미국과 역내 동맹국들과의 관계에서 우리 정부의 입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정부가 모호한 입장을 지속한다는 전략을 계속 견지한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결과적으로 둘 다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北문제도 '동맹국과의 다자협의 틀' 이용 가능성
북한 관련 문제도 비슷하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엔 우리 정부 주선 아래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최대 화두였던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선 보상 문제를 둘러싼 이견을 해소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따라서 바이든 정부의 대북외교는 트럼프 개인의 '즉흥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이전 정부와 달리 보다 '원칙'에 입각한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라인 인사 가운데 상당수가 과거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에서 대북문제를 다뤄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척 헤이글 전 미 국방장관을 비롯해 미국과 우리나라·일본·호주 등의 안보분야 전직 고위 당국자들로 구성된 미 시카고 국제문제연구소(CCGA) 주관 '미국의 동맹국들과 핵무기 확산 문제에 관한 특별연구회(TF)'가 최근 '한미일 협력'과 '쿼드 플러스'(쿼드 협의체 확대), 그리고 역내 동맹국들이 참여하는 '아시아 핵기획 그룹'(ANPG) 창설 등을 바이든 정부에 제안하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공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일과 호주 4개국이 참여하는 ANPG 창설 제안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핵기획그룹을 본뜬 것으로서 북한 핵문제를 역내 다자협의체 차원에서 다루자는 것이다.
최근 미 정부 내에서도 "북핵 문제를 북미 쌍방이 아닌 다자협의의 틀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 이를 두고 일각에선 과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북핵 6자회담' 부활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북핵 관련 다자협의체가 실제 실제로 추진될 경우 기존의 6자회담 틀보다는 미국과 이른바 '민주주의 동맹국'들이 함께 형태가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남북관계를 북미관계보다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우리 정부 입장에선 이 또한 발언권이 약해질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과 직접 대화에 나섰던 북한이 다자협의의 틀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것"(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ys417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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