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인정 20년] 7번의 재판, 10년간의 좌절 "살기 위해 한국 왔는데 왜.."
정부·법원, 제출한 증거 외면.. 8번째 재판 앞둬
외국인보호소 4년 8개월 구금 수모 겪기도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집계가 시작된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3.1%. 심사 완료된 것만 추려 계산한 수치로, 심사 중인 전체 신청자까지 포함하면 1.5%로 떨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4.8%)과 비교하면, 한국이 사실상 반(反)난민 국가임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무려 10년째 떠돌고 있는 나이지리아 출신 난민 신청자 A(39)씨. 국내 난민 심사관은 그가 어렵사리 구한 증거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고, 법원은 난민법에 없는 근거를 들어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4년 8개월은 구금 생활을 했다.
지난달 29일 경기 성남시에서 만난 A씨는 “3월에 난민인정 관련 재판을 앞두고 있다”며 “이번이 8번째 재판”이라고 말했다. 그가 겪어온 날들은 답답함과 절망이 가득했다.
나이지리아에서의 살해 협박
A씨는 2011년 토착종교단체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A씨는 "이 종교단체는 29년 전 기독교 목사였던 내 아버지가 자신들의 신도를 빼앗아 간다고 판단해, 아예 아버지를 토착종교단체의 제사장으로 세워 신자들을 다시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제안을 거절해 살해협박을 받았고, 아내와 8개월 된 A씨를 데리고 도망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A씨는 아버지 친구 B씨의 손에 자랐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나, 이 종교단체는 A씨에게 편지를 보내 아버지에게 했던 제안을 그대로 되풀이 했다. 기독교인인 A씨는 이를 거절했다.
이듬해 받은 편지에는 노골적인 살해협박 메시지가 담겼다. “네가 제사장 직을 거절해 우리의 신이 노했고, 우리는 정화의식을 위해 너의 피를 바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B씨는 A씨에게 서둘러 나이지리아를 떠나라고 권했다. A씨는 한 한인 목사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그 해 9월 한국에 입국한 그는 출입국사무소에서 곧바로 난민신청을 하려 했지만, 언어의 벽에 부딪혔다. 나이지리아는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지만, 평생을 숨어 지내며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A씨는 영어를 배우지 못했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언어는 부족어인 이보어뿐이었는데, 당시 이보어를 통역해줄 사람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며칠 뒤 유엔난민기구를 찾았지만, 그곳에서도 “통역을 도와줄 사람을 구해오라”는 요청을 받았다. ‘난민신청을 하러 왔었다’는 확인서만 받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수소문한 끝에 어렵사리 동향사람을 만났으나, 그는 그날 불심검문을 당하고 다음날 경기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다. A씨는 “통역을 구하느라 체류기간이 지난 상태여서 불법체류자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에서 확인서를 받았다고 말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4년 8개월의 구금생활... 난민신청과 불허의 연속
그는 외국인보호소의 생활이 “감옥과 똑같았다”고 했다. A씨는 “모포 두 장, 매트리스 하나, 베개 하나, 수감복이 할당됐다”며 “한 방에서 12~18명이 잠을 잤다”고 설명했다. 오전에 30분간 야외운동을 하는 것 외에는 하루 종일 내부에서만 생활해야 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있다 보니 다툼도 빈번했다. “모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TV 리모콘 쟁탈전이 벌어지는 등 별일 아닌 일로도 심하게 다퉜어요. 관리자들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자주 소리를 질렀는데, 이런 험악한 분위기도 스트레스를 가중시켰어요.”
A씨의 주장에 대해 화성외국인보호소는 “시설 내에 공중전화기가 설치돼 있어 인권침해 등의 사항이 생기면 언제든지 외부와 연락할 수 있다”며 “A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는 외국인보호소를 찾은 인권단체 사람들과 수감동료들에게 자문을 구해 2013년 1월 첫 난민신청을 했지만, 약 석 달 뒤 불인정 통보를 받았다. 같은 해 5월 이의신청을 했지만 이 또한 기각됐다. 그는 “희망의 끈이 전부 끊어진 듯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2013년 11월 구금시설 실태조사를 나온 이정훈 법무법인 에셀 변호사를 만나 소송을 낼 수 있었다. 그는 “드디어 제대로 된 법의 심판을 받아볼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4년 3월 난민불인정결정 취소 소송이 시작됐으나 그는 패소했다. ‘대안적 피신’이 가능했다는 것이 법원의 논리였다. 이 변호사는 “나이지리아 땅이 넓고, 기독교 비율이 높은 다른 지역이 있기 때문에 그곳으로 옮겨가서 거주하면 된다는 의미였다”며 “이는 난민법에서 인정된 법리가 아닌, 법원이 만든 논리”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기조는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도 번복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이 변호사는 “첫 재판 항소심 진행 중 A씨의 협박편지가 발견돼 변론제기 신청을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고 재판이 그냥 종결됐다”고 말했다.
A씨와 이 변호사는 2차 난민신청에 나섰다. 이 변호사는 “유력한 증거가 발견됐으니 다시 한 번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역시 기대는 깨졌다. 이 변호사는 "난민심사관에게 A씨를 키워준 B씨의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 등을 전달하고 한 번만이라도 연락을 해보라고 요청했지만 연락이 이뤄진 적이 없다”며 “난민심사 자체가 형식적으로 이뤄진 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난민심사관의 신원은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다. 화성외국인보호소 측에서는 “A씨의 (난민심사 등) 면담일지에는 ‘B씨에게 연락을 해달라’는 등의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결국 2차 난민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또 소송에 나서야 했다. 2016년 9월 2차 소송이 시작됐고, 이듬해 6월 A씨도 건강상의 이유로 외국인보호소를 나올 수 있었다. 이 변호사가 사비로 보증금 500만원을 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찌됐든 이들에게 다시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2차 소송도 대법원까지 가서 모두 패소했고, A씨는 다시 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됐다. 시민단체의 강력한 항의로 약 3개월만에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었지만, 당시 상황은 A씨에게 공포감을 안겼다. 그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곳에 재수감되고 보니, 재판에 지면 언제든지 다시 장기 구금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떨게 됐다”고 말했다.
정서적 불안과 막막한 생계... "이유라도 알았으면"
A씨는 정서적 불안감 못지 않게 생계의 어려움도 겪고 있다. 현재 체류는 가능하지만 일은 할 수 없는 상태다. 숙박은 주변 도움을 받아 해결하고 있으나, 당장 식사를 해결할 돈이 없다. 현행 난민법은 난민신청 이후 6개월이 지난 이들에게는 취업을 허가하도록 보장하고 있지만 A씨는 난민신청 전에 이미 강제퇴거명령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 사실상 불법체류자 신분에 머물러 있어 취업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목사님, ‘아시아의 친구들’ 관계자, 이 변호사님 등이 만날 때마다 20여만원씩 용돈을 줘서 그 돈으로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먹으며 버티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와 만난 날에도 감자탕집에서 소주를 곁들여 식사를 할 정도로 한국음식을 좋아하지만, 이를 먹을 수 있는 금전상의 여유가 없는 상태다.
한국 정부와 법원의 논리가 부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A씨와 그에게 도움을 주는 이들은 끝까지 포기할 수가 없다. A씨는 3차 난민 신청을 내 불허됐고 이에 불복한 소송을 또 낸 상태다. 이번에도 1심에서 패소해 현재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8번째 재판이다. A씨는 인터뷰 내내 이번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듯한 반응을 자주 보였다. A씨는 “난민인정을 못 받은 이유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며 “재판결과를 떠나서 이제는 내가 난민법상 정확히 어떤 요건을 갖추지 못해서 인정을 못 받았는지, 난민심사는 제대로 이뤄진 것인지 등 기본사항이라도 알고 싶다”고 호소했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국제적으로 난민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는 ‘국가정황정보’가 중요한 근거로 작용한다”며 “예를 들어 난민신청자가 겪었다고 진술한 내용이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인지를 국가정황정보를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 데, 한국정부나 법원은 구체적 국가정황정보를 토대로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국 내무부는 ‘특정 국가에서 특정한 일을 겪었거나 이력을 가지고 있는 난민신청자는 박해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국가정황정보를 근거로 마련한 구체적 지침을 공개하고 있는데, 한국정부는 이 같은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난민인정지침은 공개 시 체류연장 목적으로 난민제도가 남용되거나 해당 국가와의 외교관계 등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글ㆍ사진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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