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건너온 일본대사, 격리 풀리면 3·1절

김경진 2021. 2. 1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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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시 고이치 신임 주한 일본대사가 설 연휴 중인 지난 12일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아이보시 대사는 직전 이스라엘 대사로 텔 아비브에서 머물러 왔습니다. 코로나19로 이스라엘 현지 공항이 폐쇄돼 부임이 한참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 임명 뒤 한 달 내 부임'이라는 일본 외무성의 관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시기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앞서 지난달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에 위안부 배상 판결을 내리자, 일본에선 강력한 반발이 일었습니다. 집권당인 자민당 내부에서는 아이보시 대사의 한국 부임을 늦춰야 한다는 의견까지는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사의 부재(不在)를 통해 한국 정부에 불만을 나타내는 방식일텐데, 그런 해석이 나오기 전에 아이보시 대사는 늦지 않게 부임지를 찾아왔습니다. 다만 그는 조용히, 비공개 일정으로 한국대사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아이보시 대사는 대사관저에서 2주간 격리된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콘서트를 개최한 아이보시 대사 (가운데)


■ '한류팬' 대사의 부임…전임과는 다를까

아이보시 신임 대사는 한류팬으로 유명합니다. 1999년과 2006년에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아이보시 대사는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해서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이보시 대사는 한국 근무 뒤 일본에 돌아간 이후에도 한국 영화와 음악, 음식을 즐겼다고 합니다. 2008년엔 "출장길에서 돌아와 나리타 공항에서 바로 신승훈 콘서트장에 가기도 했다"고 스스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직전 도미타 고지 대사도 외무성 내 '한국통' 부류에 들어가긴 했지만, 한국에 대해선 강경한 입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2019년 부임한 이후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의 여파가 계속 이어진 데다 2020년엔 코로나19로 제약이 생기면서 그다지 왕성한 활동을 하지 못한 채 지난해 말 주미대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주한일본대사 자리는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가교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사실상 일본과 관련된 모든 주요 정책들이 주한일본대사관을 통합니다. 대사의 적극적인 활동이 한일 관계를 견인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거는 상황에서 신임 아이보시 대사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외교가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사정을 잘 아는 외교소식통은 "아이보시 대사가 한류팬으로 알려져 친근한 이미지가 들 순 있지만, 그도 정통 일본 외교관"이라면서 "철저히 일본 국익을 중심으로 외교를 펼쳐나갈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좌)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 (가운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우) 정의용 외교부 장관


■ 바이든 행정부, 한일관계 개선 압박

비슷한 시기 교체된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도 2주간의 격리를 마치고 도쿄에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강창일 대사는 지난 12일 아키바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상견례를 가졌습니다. 현장에서 아키바 차관은 한일 갈등 현안의 해법을 한국이 내놓으라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새로 들어선 미국 행정부도 한일 관계 개선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지난 12일 "한국과 일본 사이의 긴장은 유감스러운(regrettable) 일"이라면서 "일본과 한국 간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정의용 장관과의 첫 통화에서 한미일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모테기 일본 외무상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한미일 협력을 언급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첫 통화,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첫 통화에서도 빠지지 않고 한미일 삼각 협력이 의제가 됐습니다.

외교가에서는, 다음 달 중순쯤으로 예상되는 블링컨 장관의 아시아 방문을 계기로 한미일 세 나라의 외교장관 회담이 개최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좌) 문재인 대통령 (우)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 문 대통령 3·1절 경축사가 메시지 될 듯

현재 한일 간에 놓인 가장 큰 문제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입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게 강제징용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했고,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배상은 끝났다며 반발했습니다.

이후 일본은 수출규제 조치를 강행했고 한국은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발표했습니다. 더 나아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압류 조치가 예고된 상황입니다. 한·일이 가장 시급하게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지난달 한국 법원이 내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도 중요한 현안입니다. 강창일 대사와 상견례 자리에서 아키바 차관은 "위안부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고 일본 매체들이 보도했습니다.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모든 배상이 끝났다는 입장이고, 한국은 사법 판결은 존중할 수밖에 없단 입장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우리 정부가 2015년 한일 간의 위안부 합의가 절차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보고, 화해치유재단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현안이 많고 복잡한 경우, 여러 현안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패키지 딜(package deal)'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또 양국 정상 간의 '빅딜(big deal)'을 통해 의견 접근을 먼저 이루고 세부적인 조율을 해나가야 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이 한발 물러서서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 대화의 분기점은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경축사가 될 거란 분석이 나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3·1절 경축사에서도 "언제든지 일본 정부와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는데, 이보다 더 진전된 메시지가 나올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대외적으로 강경한 태도를 고수해온 일본이 한국 정부의 유화적 태도와 미국의 중재 노력으로 대화의 장에 다시 나설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경진 기자 (kj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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