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마지막 책에 담긴 '노나메기'란.."너도 나도 올바로 잘 사는 세상"

이영경 기자 2021. 2. 1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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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9년, 여든일곱 살. 태안화력발전소 야간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잘려 운명한 비정규직노동자 김용균의 장례식.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기력이 쇠한 상태였지만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의 영정 앞에서 백기완은 울었다. 달라지지 않는 노동자들의 현실에 피눈물을 흘렸다. ⓒ정택용


“이것은 자그마치 여든 해가 넘도록 내 속에서 홀로 눈물 젖어온 것임을 털어놓고 싶다. 나는 이 버선발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니나(민중)를 알았다. 이어서 니나의 새롬(정서)와 갈마(역사), 그리고 그것을 이끈 싸움과 든메(사상)와 하제(희망)를 깨우치면서 내 잔뼈가 굵어왔음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15일 별세한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이 생전에 펴낸 마지막 책 <버선발 이야기>(2019)에 쓴 말이다. 백 선생은 2018년 4월 심장 관상동맥이 막혀 9시간이 넘는 큰 수술을 받았다. 대수술이 끝나고 죽음의 목전에서 살아 돌아온 백 선생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원고지였다. 백 선생은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몰래몰래 목숨을 걸고 글을 써 매듭을 지은 것이 <버선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렇게 어렵게 완성한 <버선발 이야기>를 2019년 3월에 펴내며 백 선생은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송경동 시인 등이 선생과 함께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가운데)의 <버선발 이야기> 출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가 13일 서울 혜화동 학림커피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왼쪽)과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이 참석했다. 오마이북 제공


<버선발 이야기>는 백 선생이 일생 동안 붙들고 온 화두인 민중들의 삶과 사상을 이야기로 풀어낸 책이다. 백 소장의 삶과 철학, 민중예술과 사상의 실체를 ‘버선발(맨발)’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냈다. 주인공 버선발은 머슴인 어머니의 아들이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 검정 두루마기에 하얀 목도리를 두른 백 선생은 수척해보였지만 민중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일평생 ‘거리의 투사’로 살아온 그답게 커다란 목소리를 냈다.

백 선생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민중의 생각, 민중의 삶, 민중의 예술, 민중의 꿈이 그대로 담긴 게 <버선발 이야기>에 나오는 노나메기 사상이다. 너도 일하고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 사는 노나메기 세상, <버선발 이야기>에는 ‘내 것은 거짓말’이라는 민중사상의 핵심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버선발이 던진 ‘말뜸’(화두)은 내 거라는 건 거짓이라는 것이야. 내 거는 끊임없이 내 거를 요구해. 버선발 얘기는 오늘의 자본주의 반인류적 반생명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커다란 말뜸이 아니겠느냐. 썩어 문드러진 구조를 한바탕 뒤집어 엎자는 거야. 한바탕을 바로 오늘 우리가 하자는 거지.”

백 선생은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다. <항일민족론>(1971),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1979),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2009), <두 어른>(2017) 등 평론·수필집을 비롯한 다수의 저작을 남겼다.

백 선생은 평생을 반독재·민주화 투쟁에 헌신했고, 힘없는 농민, 노동자 곁에서 싸웠다. 심장수술 이후 건강이 나빠진 이후에도 언제든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노동자 곁을 찾았다. 이 책을 펴낸 2019년에도 태안화력발전소 야간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잘려 운명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기력이 쇠한 상태였다. 그는 김씨의 영정 앞에서 울었다. 버선발이야말로 백 선생의 삶 자체다.

“<버선발 이야기>를 쓰면서 내가 죽더라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도 있구나 생각을 했어요.”

백 선생의 말처럼 백 선생은 세상을 떠났지만 한평생 민중 곁을 지키며 자신의 몸을 내놓고 싸우던 백 선생의 정신은 우리 곁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관련기사 : ‘버선발 이야기’ 출간 백기완 소장 “다 같이 잘살되 올바로 살자는 이야기”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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