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로나19 백신 무료접종 앞두고 커지는 잡음..절차 무시한 '건보재정 동원령'에 부글

윤지원 2021. 2. 15. 10: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전 국민 코로나19 백신 무료 접종을 위한 접종비 재원의 30% 가량만을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고 나머지 70%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에서 조달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며 논란이 일고 있다. 건보 재정을 무료접종에 동원하려면 건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백신 접종을 건보 급여 대상으로 의결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정부가 이 같은 방침을 건정심에 '일방 통보'하며 건정심 내부에서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터져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의 건보 재정 동원령은 당초 문재인 대통령이 1월 신년사를 통해 무료 접종 계획을 밝히며 불거졌던 예산 낭비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국비 투입을 최소화하고 건보 가입자들의 보험료를 끌어 쓰겠다는 것인데, 이는 건보 재정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방침일 뿐 아니라 '무료 접종'이라는 공언을 무색케 하는 것이란 지적이 많다.

한편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 간에 백신을 위탁 접종하는 민간 병원 지정 기준을 둘러싼 대립각마저 커지며, 당장 오는 26일 코로나19 백신 접종 개시를 앞두고 잡음이 커지고 있다 .

15일 정부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열린 건정심 회의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비의 70% 가량을 건보 재정에서 충당하는 잠정 방안을 보고했다. 민간 병원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며 발생하는 '접종 시술비' 가운데 3000원억원 가량을 건보 재정에서 조달하고 국비 투입은 1300억원 정도로 최소하겠다는 계획이다 .

문제는 해당 안건이 이날 건정심 '심의 의결 안건'이 아닌 '보고 안건'으로 상정됐다는 것이다. 통상 건강보험 급여 적용 여부는 건보 재정 관련 사안이라 심의 의결 안건으로 올라와 건정심의 가입자 단체들과 공익 위원들의 협의를 거쳐 결정되는데, 코로나19 백신 예방 접종 급여 적용이 사회적 합의 절차를 건너 뛰고 정부 차원의 통보로 갈음된 것이다. 일부 공익 위원과 가입자 단체가 이 자리에서 "어떻게 이걸 의결 안건이 아닌 보고안건으로 올리나", "이렇게 일방 통보할거면 회의를 왜 여나"는 식의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정심은 건강보험정책에 관한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핵심 기구로서 주로 건강보험정책 시행에 따른 예산 관련 사항을 심의, 의결해야 하는데, 이 같은 정부의 통보는 건정심을 전문적 심의 없는 '거수기' 역할로 전락시키는 것이란 지적이다.

건정심 내부 문제제기와 관련해 복지부 관계자는 "현장에서 이의제기가 있었단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다만 현행 건강보험법과 시행령에 따라 '보고 안건'으로 올려도 무방하다고 판단한 사안이다. 아직 70% 조달 방침을 최종 확정한 것은 아니라 일단 보고를 한 것이고 계속 검토 중이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최근 건강보험 재정 현황. [사진 = 보건복지포럼 2020년 12월 통권 제289호]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건보 가입자의 보험료를 끌어쓰겠다는 것은 당초 무료접종 취지와도 어긋난다는 평가가 많다. 건강보험은 국비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가입자가 낸 보험료를 건보공단이 운영하는 식의 사회보험이기 때문이다. 의협 관계자는"건보 급여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생색은 다 내고 있지만 사실상 국민에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며 "무료접종은 국가 예산으로 해야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예방접종은 복지부 소관 국민건강증진기금을 활용하는게 맞지 건보 재정을 끌어 쓰는 건 국민들에게 손해다. 거위털 뽑듯 살살 뽑아서 못알채는 것일 뿐"이라며 "고령화 등으로 이미 빨간 등이 켜진 건보 재정의 바닥을 빨리 드러내게 하는 일이다"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그간 국가 예방접종 사업은 건보 적용이 아니라 국민건강증진기금 사업으로 진행돼 왔다.

한편 이처럼 접종비 재원 마련 방식을 놓고 잡음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오는 26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개시를 앞두고 이를 접종할 민간 위탁 의료 기관과 정부의 기싸움도 팽팽해지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지침을 기존 예방접종 지침보다 더욱 강화하자 개원의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의협 관계자는 "기존 예방접종 지침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들이 추가됐다"며 "백신 보관 전용 냉장고에 내부 온도계를 부착해 24시간 모니터링해야 할 뿐 아니라 온도 일탈 시 알람기능도 보유해야 하는데, 이게 상당한 비용이 든다. 또 100막원대 제세동기를 갗추라는 식으로 규제 사항만 늘어나고 추가 지원은 없다"고 했다. 이어 "정부의 지침은 의료기관의 현실과 유리돼 있다. 백신 접종 준비 공간, 이상 반응 관찰 공간을 분리해 갖춘 지역 의원이 어디겠나. 그 모든 비용을 민간 위탁 의료 기관이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가"라며 "의협 차원에서 5개 권역의 시·도 의사 회장님들과 백신 접종 관련 간담회를 진행해왔는데, 여기서 요구사항을 수렴해 건의했지만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몇몇 회장들은 이럴거면 민간 접종기관에서 빠지겠다고 하는 분도 있다"고 주장했다. 방역당국은 위탁의료기관을 지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백신 보관 관리 및 수용 능력 ▲예방접종 시행 및 이상반응 대처 능력 ▲감염관리 수준 ▲접종공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의협의 주장이 코로나19 백신 전국민 접종을 앞두고 부리는 '생떼'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접종 기관으로 지정된 민간 병원들이 평균 5000만원의 수익을 거둘 것으로 자체 추계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백신 접종으로 평균 5천만원의 수익이 날 수 있으니, 민간 병원들이 접종기관에 지정되려고 앞다투어 지원했다"며 "당초 1만 곳을 위탁의료기관으로 지정하려했지만 워낙 신청자가 많아 1만2000곳 정도가 지정될 예정이다. 여기에 추가적인 정부 지원까지 해달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라고 일축했다. 민간 위탁 의료기관이 백신을 접종할 경우 환자 1명당 시술료는 약 2만원 가량으로 책정될 전망이다.

[윤지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