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전두환 시대 뚫고 '임을 위한 행진'..'진보 원로' 백기완은 누구(종합)

이상학 기자 2021. 2. 1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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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 원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오랜 투병 끝에 15일 오전 영면했다.

1984년 백범사상연구소를 해체하고 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한 그는 소장직을 맡아 타계하기 전까지 남북통일과 민족화합을 위한 폭넓은 활동을 펼쳐왔다.

백 소장은 2016~2018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촛불집회에 매번 참여했으며 세월호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조계종 적폐청산 운동에도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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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반대·직선제 요구·통일 운동 주도..민중후보로 대선 출마도
시집·수필집 발간에 순우리말 사용..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사진은 1992년 시위 도중 백골단의 구타에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 열사 1주기 추모식 참석 모습. © 뉴스1(통일문제연구소 제공)

(서울=뉴스1) 이상학 기자 = 진보진영 원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오랜 투병 끝에 15일 오전 영면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지난해 1월 서울대병원에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장례식장은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1932년 황해도 은율군 동부리에서 태어난 백 소장은 6.25 종전 직후인 50년대 후반부터 농민운동과 빈민운동에 투신했다. 1964년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민주화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1972년에는 백범사상연구소를 충무로에 개소하고 항일운동 연구에 전념하며 신채호, 김구 등의 글을 수집하고 정리했다.

1973년에는 유신헌법 개헌을 촉구하기 위해 재야인사 30명의 일원으로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했고 이듬해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장준하 선생과 함께 구속됐다.

1979년 민주청년협의회 결성에 참여한 백 소장은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인 'YWCA 위장결혼' 사건으로 구속수감됐다. 백 소장은 2019년 11월 이 사건 재심에서 3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백 소장 등 당시 시위를 주도한 핵심 인물 14명은 서울 용산구 국군보안사령부 분실에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198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병감정유치로 풀려난 고인은 한양대병원에 장기 입원했고 고문 후유증으로 장기요양 중이던 1981년 지인들의 도움으로 시집 '젊은 날'을 펴냈다.

1984년 백범사상연구소를 해체하고 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한 그는 소장직을 맡아 타계하기 전까지 남북통일과 민족화합을 위한 폭넓은 활동을 펼쳐왔다.

1986년에는 명동성당 성고문 폭로대회를 주도하다 수배 중 구속됐고 고문 후유증이 도져 한양대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는 형집행정지로 나오자마자 1987년 6월 항쟁에 참여해 시민대표로 연설했다.

백 소장은 1987년 12월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에 민중후보로 출마했지만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야권후보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다. 고인은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에 맞서 군정을 종식시키려면 김영삼·김대중 야권후보의 단일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호소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백 소장은 2016~2018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촛불집회에 매번 참여했으며 세월호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조계종 적폐청산 운동에도 힘을 보탰다.

그는 투병 중이던 지난해 심산 김창숙연구회가 주최하는 제22회 심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인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노랫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운동권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고향인 황해도를 그리워하면 쓴 '장산곳매 이야기'라는 수필집도 있다.

백 소장은 생전 '3대 입담꾼'으로 회자될 정도로 재기와 해학, 그리고 촌철살인의 입담으로도 유명했다. 유홍준 교수는 2011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백 소장을 황석영 소설가, 방동규씨와 함께 3대 입담꾼으로 꼽기도 했다.

백 소장은 '젊은 날' '이제 때는 왔다' '백두산 천지' 등 시집과 '자주고름 입에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백기완 에세이집' '항일민족론' '부심이의 엄마생각' 등 수필집도 여러권 냈다. 열렬한 국어순화론자로 순우리말 쓰기를 강조했을 뿐 아니라, 축구선수가 되려 했을 정도로 축구 사랑이 대단해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대표 선수들 앞에서 축구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했다.

shakiro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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