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언의 책과 사람들]아리랑 배우 주인규와 '우리 청춘의 조선'

남정현 2021. 2. 1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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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춘의 조선'(사계절, 1988)은 1920-30년대 조선에서 혁명적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일본인 노동자 이소가야 스에지(磯谷季次)가 쓴 회고록이다.

미즈노 교수는 이소가야가 쓴 '좋은 날이여 오라'라는 책에 실린 주인규에 관한 내용과 자신이 모스크바 레닌도서관에서 찾아 '우리 청춘의 조선' 개정판에 부록으로 실었던 주인규의 글을 보내주면서 이후에도 주인규에 대해 계속 연구해 주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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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우리 청춘의 조선'(사진=한상언 제공)2021.02.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우리 청춘의 조선'(사계절, 1988)은 1920-30년대 조선에서 혁명적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일본인 노동자 이소가야 스에지(磯谷季次)가 쓴 회고록이다.

함흥지역의 노동운동과 조선인 노동운동가들의 모습이 생생히 묘사된 이 책은 김계일에 의해 번역되어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주인규라는 인물 때문이었다.

그는 나운규의 '아리랑'(1926)에 출연했던 유명 배우이자 해방 후 북한영화의 토대를 구축한 인물로 한국영화사에 등장하다. 반면 역사학 쪽에서는 1920-30년대 혁명적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제2차 태평양노동조합 사건으로 투옥되는 등 노동운동가로서의 면모가 더 잘 알려져 있다.

여러 다른 이유로 시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이 책을 읽었다. 가장 먼저는 주인규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소가야는 주인규가 영화배우로서 활동한 내역은 정확히 알지 못한 듯하다.

그 대신 주인규의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담겨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다.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를 친구처럼 대하는 모습이나 해방 후 일본인들이 집단 수용된 함흥의 유곽촌에 전염병이 창궐하자 이들을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습 등이 그렇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 그가 휴머니스트였음을 알게 된다.

이후 주인규의 동생 주선규를 비롯해 함흥지역에서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노동운동가들, 한설야를 비롯해 함흥의 유력한 인물들의 행적을 조사하기 위해 이 책을 반복적으로 읽었다. 그럴 때마다 새롭게 나타난 흥미로운 인물들이 남긴 삶의 단편들을 통해 거대한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재미를 느끼곤 했다.

이 책과 관련해서 이소가야 스에지의 말년에 그와 교유했던 교토대학의 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 교수를 만났던 게 기억난다.

2013년 봄,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열린 한일비교영화연구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교토를 찾았다. 이날 세미나는 일제강점기 조선영화들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세미나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미즈노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영화배우로 유명했던 주인규에 대해 언급했다. 주인규에 대해 논문을 쓴 적이 있던 난 귀가 쫑긋해졌고 자연스럽게 미즈노 교수와 주인규와 이소가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미즈노 교수는 이소가야가 '우리 청춘의 조선'을 쓸 때 자료 조사를 도운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친밀하게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즈노 교수가 주인규의 친구인 이소가야의 말년을 지켜보았다는 말에 나는 마치 주인규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주인규의 동생인 주선규가 지병으로 사망한 것 까지는 알고 있었던 이소가야는 옛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북한 방문 계획을 세웠지만 북한당국에 의해 방문이 거부되자 북한정권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 미즈노 교수에게 내가 쓴 주인규와 관련한 논문을 보냈다. 미즈노 교수는 이소가야가 쓴 '좋은 날이여 오라'라는 책에 실린 주인규에 관한 내용과 자신이 모스크바 레닌도서관에서 찾아 '우리 청춘의 조선' 개정판에 부록으로 실었던 주인규의 글을 보내주면서 이후에도 주인규에 대해 계속 연구해 주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최근 김례용이라는 인물에 대해 확인할 내용이 있어 '우리 청춘의 조선'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이 책처럼 시간을 두고 여러 번 읽게 되는 책이 있다. 정말 감동적이어서 다시 읽어보고 싶거나 뭔가 확인할 부분이 생겨 다시 보게 되거나 우연찮게 책을 다시 펼쳐 보는 경우들이다.

그렇게 책을 읽다보면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던 부분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 어떻게 알게 될지 모를 낯선 이름들을 눈에 새겨두는 이유이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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