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이 향년 88세로 15일 별세했다. 통일문제연구소는 이날 백 선생의 부고를 전하면서 생전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 89장을 공개했다.
백 선생의 생애에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응축돼 있다. 그는 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고 약자의 편에서 싸웠다.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백 선생은 1945년 해방 이후 13세의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내려왔다. 한반도 분단이 한 가족의 분단으로 이어져 여덟 식구가 남북에 떨어져 살게 된 것은 그가 통일운동에 투신하게 된 배경이었다.
1950년대엔 도시빈민운동과 농민운동을 했고, 1960년 4·19 혁명에 뛰어들어 정치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나섰다. 함석헌·장준하 선생 등과 함께 반일 투쟁을 하다 구속됐고, 유신헌법 철폐를 위한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 등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반대 투쟁을 했다. 그러다 1974년 3월 긴급조치 1호 첫번째 위반자로 체포돼 징역 12년·자격정지 12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39년 만인 2013년 8월 재심에서 백 선생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백 선생은 1986년엔 명동성당에서 이른바 ‘권인숙 성고문 사건 진상 폭로대회’를 주도하다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됐고, 이듬해 6월 항쟁에서 시민대표로 연설했다. 1987년과 1992년엔 대통령선거에 민중후보로 출마해 민주정권 쟁취와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에 힘썼다.
이후에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밀양 송전탑 건설, 한미 FTA 저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 등 사회 이슈에 관심을 놓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 백 선생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해왔다.
사진에 달린 설명은 사진을 촬영한 통일문제연구소와 사진사 등이 직접 적었다. 연구소 측은 주민등록상 백 선생의 출생년도가 1932년으로 돼있지만 실제 태어난 해는 1933년이며, 백 선생의 평소 뜻에 따라 1933년을 기준으로 한국식 나이계산법으로 나이를 표기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