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맞서는 각오 다지겠다"..백기완 별세 SNS 추모 행렬
[경향신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별세 소식에 정치권과 시민사회 인사들은 일평생 사회현장을 누빈 그를 향해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이 시대 청년들에게 장벽이 되고 있는 많은 기득권들과 맞서 제 몫의 용기를 내고 두려움을 떨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으로 선생님의 뜻을 기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선생께서는 젊은 청년들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힘이 있으셨다. 그분의 연설을 들을 때면 용기가 솟았고, 나태함이 부끄러워졌다. 그분의 격려 덕분에 두려움을 떨치고 한 걸음을 더 내딛었던 많은 청년들 중에 저도 있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는 “선생님의 뜨거운 가슴으로 위로를 받았고, 선생님 불호령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었다. 한평생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길 틔어주신 그 자리에 저희들 잘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1982년 3월 6일 명동 YWCA 대강당에서 경찰버스가 10여대가 대기하는 가운데 백 선생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고 회고했다.
그는 “백 선생은 ‘공해란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가족의 삶을 파괴하고, 마을 공동체를 파괴한다’고 정의하셨다”면서 “백 선생님, 편히 잠드세요”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다 실신해 병원으로 이송된 송경동 시인은 “병원에서 퇴원하고 맨 먼저 병상의 선생님 찾아뵈러 했는데 가슴이 무너지는 소식”이라면서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들 영영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백 선생은 1950년대부터 농민·빈 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하며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이날 오전 영면했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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