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하원에 재발의된 '북미 이산가족상봉법', 70년 고통 끝내기를"
[전홍기혜 특파원(onscar@pressian.com)]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시대의 첫 회기인 117회 미국 연방의회에서 한반도 관련 첫 법안이 발의됐다. 민주당 그레이스 멩(뉴욕) 의원과 공화당 밴 테일러(텍사스) 의원이 지난 4일 공동으로 대표 발의한 '미국 내 한인의 북한 가족과 재회 논의 촉구 법안'(H.R. 826)이다.
이 법안은 미 국무부 장관이 한국 정부와 협력해 이산가족 상봉 방안을 마련하고, 북한인권특사가 1년에 최소 두 차례 이산가족을 면담하도록 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다. 2000년 이후 남북한 사이에 이산가족 상봉이 20여차례 추진됐지만, 미국 국적을 가진 한인들 중 북한에 가족이 있는 10만여 명은 지난 70년간 전혀 만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 법안이 추진됐다.
이 법안은 지난 2019년 발의돼 지난 해 3월 하원 본회의까지 통과됐지만, 상원을 통과하지 못해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인권 이슈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공화당이 다수당이었던 상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에는 지난 회기 때 하원을 통과한 법안이기 때문에 더 빠른 속도로 하원을 거쳐 상원까지 무사히 통과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정권 때였던 지난 회기와 달리 백악관, 하원, 상원을 모두 민주당이 주도하고 있어 가족, 인권과 관련된 이 법안이 통과되기엔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국계 의원이 역사상 최대인 4명이나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것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앤디 김(뉴저지), 메릴린 스트릭랜드(워싱턴) 의원과 공화당 영 김(캘리포니아), 미셸 박 스틸(캘리포니아) 등 한국계 의원 4명이 모두 공동 발의에 참여했다. 이들을 포함해 총 21명의 의원이 공동발의에 참여하면서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여전히 의회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법안이 실제로 상원을 통과하기 전까지 낙관하기는 쉽지 않다.
미주 한인들과 관련 단체들은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이산가족 상봉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애써왔다. 앞서 2014년부터 매 회기 때마다 "미주 한인 이산가족의 상봉 지지 결의안"이 발의돼 하원에서 통과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의안은 지지 입장을 표명을 하는 것이지 법적인 구속력은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추진되지는 못했다. 이런 십수년의 노력 끝에 이번 회기에는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간절함이 매우 크다. 현재 이산가족 중 62%의 연령이 최소 80세 또는 그 이상의 고연령자이기 때문이다.
지난 번에 이어 이번에도 이산가족상봉법을 대표 발의한 멩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처럼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법안을 다시 한번 소개하고 테일러 의원과 협력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내 지역구인 뉴욕 퀸즈에는 거의 20만 명의 한인들이 사는데 이들 중 실제로 북한에 가족이 있는 한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들 중 상당 수가 70-90대의 고령이라 가족과 재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데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기술, 리소스는 이미 갖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리더십만 있으면 된다. 이번에는 이 법이 꼭 제정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테일러 의원도 멩 의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뒤 "많은 미국인들은 가족 친지들과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아 추억을 회상하고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반면, 재미 한인들은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들과 수십년 동안 말조차 나눌 수 없다"며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법안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힌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재미 한인들이 북한에 사는 친척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며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재회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대북 인권 노력의 한 요소가 돼야 한다"고 이 법안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폴 리 재미 미국 이산가족협회장은 "이 법안은 지난 70년 동안 한국전쟁으로 인한 지속적인 고통을 견뎌온 사람들에게 끝을 알리는 역사적인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1년부터 이 법안과 관련된 의회 지원 활동을 해온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 김동석) 송원석 사무총장은 프레시안과 전화 통화에서 "상식과 공동체, 연민에 입각한 이 법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기념비적인 단계라고 평가할 수 있다"며 "우리는 시간이 다 되기 전에 고령의 재미 한인들이 가족들을 만나고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를 조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북한인권대사를 임명해서 이를 추진하는 것이 인권 이슈에 소극적인 북한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 송 총장은 "이 법안은 미국 시민과 북한에 있는 가족의 재회를 지원하는 법안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입장에서는 이를 책임지고 추진할 사람이 필요한데 이 문제는 인권 이슈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국무부의 북한인권특사가 담당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트럼프 정부 4년 동안 공석이었지만, 바이든 정부는 조만간 특사를 임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북한 인권 문제가 정치화 되어 있는 측면이 있어서 남한과 북한에서는 껄끄럽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역으로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인권 문제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이 적을 수도 있다"며 "현재 단절돼 있는 미국과 북한 사이의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가족 상봉이라는 인도주의적 차원의 문제로 '북한 인권'이 갖고 있던 정치적 성격을 희석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지난 8일 미 의회에서 발의된 이산가족상봉법에 대해 "미국 하원에서 이번 회기에 발의된 첫번째 한반도 이슈가 이산가족 상봉법이라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당은 정부와 함께 남북이 당장 할 수 있는 이산가족 화상상봉, 남북 적십자회담 등 인도적 교류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환영 입장을 밝혔다.
[전홍기혜 특파원(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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