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의 온차이나] 신장(新疆)이 뭐길래?
설 연휴를 앞두고 미중이 신장 위구르족 인권 문제를 둘러싸고 한바탕 설전을 주고 받았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3주 만에 시진핑 국가주석과 통화를 했는데, 신장 문제로 맞붙었죠. 바이든 대통령이 신장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자, 시 주석은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이달 초에는 영국 BBC가 위구르족 재교육 시설에 수감됐다가 풀려난 위구르족 여성을 인터뷰해 이곳에서 집단 성폭행, 강제 피임수술 등이 이뤄졌다고 폭로했죠. 중국은 이 보도가 가짜뉴스라고 반박하면서 BBC 국제 뉴스 전문 채널인 ‘월드 뉴스’의 중국 내 방송을 즉각 중단시켰습니다.
◇시진핑 집권 이후 재교육정책 ‘인권 논란’ 역효과
위구르족 재교육 시설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운영됐죠. 서방국가들과 위구르족 인권단체들은 위구르족의 분리 독립 의지를 꺾기 위한 재교육시설로, 이곳에서 갖가지 인권 유린이 벌어진 것으로 봅니다. 이곳에 수용됐던 위구르족이 최대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죠.
반면, 중국은 직업교육시설로 중국어와 법률 교육, 직업 훈련, 탈극단주의 교육 등이 이뤄졌다고 주장합니다.
2014년은 시진핑 주석 집권 2년차로, 위구르족의 분리 독립 운동이 거셌던 시기입니다. 위구르족이 집단으로 관공서를 습격하거나 한족을 공격하고, 중국 공안은 이에 맞서 발포하는 등 사실상의 전쟁 상태였죠. 쿤밍과 광저우 등 신장 외부 지역에서 위구르족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시 주석은 그해 4월27일부터 30일까지 신장 지역을 둘러봤는데, 일정 마지막 날인 30일에도 우루무치 남역에서 테러가 발생했죠. 베이징으로 돌아온 시 주석은 “조금도 사정을 두지 말고 강력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합니다. 그 이후 만들어진 것이 말 많은 위구르족 재교육시설입니다.
◇이슬람교 믿는 튀르크계...청나라 때 중국에 편입
위구르족은 시베리아에서 발칸반도에 이르는 광활한 중앙아시아 지역에 퍼져 살았던 튀르크계의 일족으로 이슬람교를 믿습니다. 한때 중앙아시아를 호령했던 위구르제국을 세우기도 했고, 이후에도 독립 왕조가 이어졌지만 19세기말 청나라에 편입됐습니다.
20세기 들어 중국이 혼란할 때 두차례 동튀르키스탄공화국을 세운 적이 있었지만 몇 년을 못 갔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는 신장위구르자치구가 됩니다. 이름은 자치구였지만 강압적인 통치가 계속돼왔죠.
위구르족 분리독립운동의 구심점은 ‘동튀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이라는 무장단체입니다. 국제테러조직인 알카에다와도 연계가 돼있죠. 이 단체는 1990년부터 신장 곳곳에서 분리 독립을 위한 테러 공격을 해왔는데,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진 건 2009년 7월 우루무치 사태였어요.
위구르족 1000여명이 칼과 몽둥이 등으로 무장한 채 한족이 운영하는 상점 등을 닥치는대로 부수고, 버스 등을 습격해 한족을 살상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현지 거주 한족들도 이에 맞서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하고 반격했죠. 중국 당국이 집계한 당시 공식 사망자만 197명에 이릅니다.
당시 중국 당국은 이례적으로 외신들의 현지 취재를 허용했죠. 한족 주민의 피해가 컸던 만큼 위구르족의 폭력성을 부각하겠다는 의도였을 겁니다. 당시 베이징특파원이었던 저도 우루무치에서 2주 가량 취재를 했죠.
이 사건은 신장 당서기였던 왕러취안(王樂泉)의 강압적 통치가 직접적인 원인이었죠. 그는 위구르족 분리 독립 움직임을 막기 위해 북한의 오호담당제와 비슷한 감시 조직을 운영했습니다. 테러 집단을 뿌리뽑겠다며 수천명의 위구르족을 가족에 제대로 알리지도 않은 채 체포하기도 했죠. 시위현장에서 만난 위구르족 아주머니는 “남편과 아들이 잡혀 갔는데, 어디 있는지 연락도 안된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신장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그 과실이 고스란히 한족 이주민들에게 돌아가는 데 대한 분노도 작용했죠. 위구르족 근로자들의 임금은 한족의 60~70% 정도였습니다.
중국은 왕러취안을 사임시키고 유화정책을 폈지만 이후에도 산발적인 테러는 계속됐죠.
◇인구 1000만명 넘는 4대 소수민족
당시 현장에서 만난 위구르족은 중국인이 아니었습니다. 외모도 서양인에 가깝고 중국말도 거의 못했죠. 일부러 배우지 않으려 한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중국은 한족을 제외한 55개 소수민족을 ‘중화의 자녀’라고 부르죠. 하지만 위구르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루무치에서 만난 한 한족 택시기사는 위구르족 손님들로부터 수시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당시 신장은 전쟁 상태였어요. 과거 위구르족 왕조의 도읍지였던 신장 서쪽 끝의 카스를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기관총으로 무장한 중국 군 트럭이 시내를 순찰하고 있더군요.
◇포기할 수 없는 자원의 보고
위구르족은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인구가 1000만명을 넘는 4대 민족 중 하나입니다.
이런 덩치 큰 소수민족이 강한 독립 의지를 갖고 무장 투쟁까지 하고 있으니, 중국으로서는 난감한 일이죠. 중국 소수민족 정책의 가장 약한 고리가 바로 신장입니다. 중국이 혼란해져 신장이 무너진다면 옛소련 붕괴 때처럼 다른 소수민족도 줄줄이 독립하겠죠.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집요하게 위구르족 인권을 거론하는 뒤에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신장은 중국 서북쪽 끝에 있는데, 중국 국토 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하죠. 자연자원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중국 석유 매장량의 30%, 천연가스의 34%, 석탄의 40%가 이곳에 묻혀 있죠. 중국으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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