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기고, 락스 퍼붓고, 화상 입히고.. 학대받다 숨진 또 다른 '정인이들'

김수미 2021. 2. 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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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에 락스 세례 받고 숨진 원영이.. 계모에 살인죄 적용
아이 폭행한 친부 말리지 않은 동거인도 무거운 책임
생후 55일 아기 운다고 뜨거운 물 뿌린 20대 부부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2차 공판이 17일 열린다. 지난달 13일 열린 첫 재판에서 검찰은 장씨에 대해 살인죄를 추가했지만, 장씨 측이 혐의 일체를 부인하고 있어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정인이 사건에 앞서 한 겨울 계모의 락스 세례를 받고 차가운 욕실에 갇혀 숨진 뒤 암매장된 원영이를 비롯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모진 학대를 받다가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이 적지 않다. 저항할 힘조차 없는 아이가 죽음에 이를 정도로 무자비하게 학대한 가해 부모들운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15일 세계일보가 아동권리보장원의 ‘2017∼2019년 아동학대사건 판례집’을 분석한 결과, 최근 법원은 아동학대 일반 사건에 비해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대체로 과거보다 엄격한 잣대로 무거운 형을 선고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울산 계모 사건’과 ‘천안 계모 사건’처럼 2심 재판부에서 형량을 더 높이기도 하고, 학대를 방치한 책임을 법적 배우자 뿐 아니라 동거인에게까지 적극적으로 물었다.

◆화장실에 가둬 굶기고 락스, 찬물 고문한 계모에 살인죄 인정

계모 A씨는 네 살인 원영이가 소변을 잘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2015년 11월부터 화장실에 가두고,하루 한두 끼만 주면서 주먹과 청소솔로 마구 때렸다.

이듬해 1월 말 부부싸움을 한 뒤 화풀이를 하기 위해 5일간 굶은채 화장실에 갇혀 있던 원영이에게 살균제인 청소용 락스 1ℓ를 퍼부었다. 그러나 친부는 원영이에게 찬물을 대충 뿌린 후 물과 락스로 젖은 옷을 입고 있는데도 그대로 화장실에 방치했다.

분이 풀리지 않은 A씨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추가로 락스 1ℓ를 원영이 정수리부터 온몸에 부었다. 락스를 뒤집어 쓴 원영이가 곳곳에 화상을 입고 탈진하자, A씨는 옷을 벗겨 찬물을 뿌린 후 알몸 상태로 방치했다. 
그날 기온은 영하 8도였다. 원영이가 3개월간 갇혀 있다가 생을 마감한 좁은 화장실은 난방도 되지 않고 환풍기로 외부 공기가 순환돼 바깥 기온과 거의 같았다. 

아버지와 계모가 따뜻한 거실에서 술을 마시며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을 때, 화장실에 있던 원영이는 마지막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외마디 소리를 토해냈다. ‘엄마’.

판결문에 따르면 한겨울 화장실에 갇힌채 밥도 거의 먹지 못한 원영이는 영양실조에 걸려 기아(饑餓) 수준의 상태였다. 또래 아이들보다 한참 작은 112.5㎝ 키에 몸무게는 15.3㎏에 불과했다. 그 앙상한 몸에 갈비뼈, 팔, 쇄골이 골절되고 열창, 머리와 전신에는 타박상을 입는 듯 성한 곳이 없었다.

수원지법은 △지속적 학대를 당한 원영이가 영양실조로 기아 상태였던 점 △속옷 차림의 아이에게 찬물을 뿌리고 난방이 안 되는 화장실에 방치할 경우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던 점 등을 들어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된다며 계모와 친부에게 각각 징역 20년,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계모와 친부의 형량은 징역 27년, 징역 17년으로 각각 늘었고 대법원도 이대로 확정 판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두명이나 입양해놓고 때려 숨지게 한 50대

B씨(당시 53세)는 부인과 함께 7개월의 위탁기간을 거쳐 세 살배기 아이를 입양했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아이를 폭행하거나 화상을 입히는 등 학대했다. 

얼마후 또다시 1살 아이를 입양했지만,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집기로 머리를 수차례 맞은 첫째 입양아는 경막하출혈로 뇌사상태에 빠져 대학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짧은 생을 마감했다.

B씨는 아이가 대리석 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담당의사와 법의학자는 “두부에 강한 충격으로 인한 손상들이 광범위하게 발견됐고, 특히 두간과 안구까지 손상됐는데 이는 상당히 강한 외력이 수차례 가해진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냈다. 

대구지법은 2017년 B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B씨가 입양을 전제로 보호하던 1세, 3세 두 아이에게 훈육이라는 명분으로 지속적으로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죄질이 무겁다면서 징역 15년으로 형량을 높였다. 또 그의 부인에게는 방임 등의 죄를 적용,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선천적으로 아픈 아이 폭행한 친부 말리지 않은 동거인도 무거운 책임 물어

C씨는 부인과 이혼하고 동거녀와 함께 5세 아이를 키웠다. 아이는 갑상선기능저하증을 앓고 있었고, 선천적으로 호흡기도 좋지 않아 정기적으로 병원 검진을 받고 약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를 때리고 짓밟은 후 학대 사실이 탄로날까봐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도, 약을 먹이지도 않았다.

C씨의 구타와 방치로 아이는 상반신에 수포가 생기고 혼자서 걷거나 서지도 못할 지경이 됐지만, 폭행은 계속됐다. 급기야 아이가 호흡 곤란을 일으켜 의식을 잃었는데도 119를 부르지 않고 숨질 때까지 방치했다.

2019년 4월 대법원은 C씨에게 징역 20년을, 아이가 사망할 때까지 C씨의 폭행을 말리지 않고 함께 방치한 동거녀에게는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아이의 친모가 처벌불원서를 냈지만, 법원은 특별감경요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장원은 “아이를 보호·양육하는 보호자의 범위와 책임을 적극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생후 55일 아기 운다고 화상 입혀 숨지게 한 20대 부부는 감형 

반면 생후 2개월이 채 안된 딸을 목욕시키다 짜증난다며 화상을 입혀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부부는 항소심에서 감형받았다.

D씨는 생후 55일된 아기가 목욕 중 계속해서 울자 화장실 바닥에 눕혀 뜨거운 물을 뿌렸다. 아기는 온몸에 1∼2도 화상을 입었으나 부부는 학대 사실을 들킬까봐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화상 상처가 심해지면서 아이는 분유도 삼키지도 못하고 다 토하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숨졌다.

조사결과 부부는 평소에도 아이가 울면 엉덩이가 빨갛게 부어오를 정도로 때리고, 입을 손으로 막거나 테이프로 붙였다. 또 자신들은 식사나 운동을 나간다며 하루 1∼3회씩 아기 혼자 방치했다.

분유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55일의 짧은 생을 마감한 아이는 세상에 나와 불과 1㎝밖에 자라지 못했고, 몸무게는 출생 당시보다 줄었다.
20대 초반이었던 부부는 어린 나이와 경제적 고립 등으로 양육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호소했지만, 여성의 부모로부터 출산 준비 및 병원비 등의 명목으로 1330만원을 송금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과 7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깨고 이들의 형량을 징역 9년과 5년으로 각각 줄여줬다.

재판부는 “양육 능력을 갖추지 못한 20대 초반의 부부가 출산했지만, 주변으로부터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서 양육 상식 부족과 미숙함, 부적응으로 인한 정서 문제에 양육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일어난 측면도 있다”며  “또 이들은 처벌을 달게 받은 뒤 재결합, 충분한 양육환경을 갖춘 뒤 자녀를 출산해 제대로 양육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고 감형 사유를 설명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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