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방·신북방·그린뉴딜 토대로 '한국적인 ODA' 펼치겠다"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신남방'과 '신북방', '그린 뉴딜'.
지난해 12월 초 취임한 손혁상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이사장이 제시한 우리나라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의 3대 키워드이자 방향성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발을 맞춰 '한국적인 ODA'를 펼쳐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신남방'은 중국을 대신할 6억 명에 이르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말하고, '신북방'은 우크라이나, 조지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14개 유라시아 국가와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녹색성장과 같은 개념의 '그린뉴딜'은 환경과 사람이 중심이 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뜻한다.
손 이사장은 1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정책에 발맞춰 그린 뉴딜과 신남방·신북방 지역 ODA(무상원조)를 확대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시대에 맞춰 디지털화하고 원격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선진국 사례를 벤치마킹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신흥공여국 이미지를 벗고 한국적인 ODA로 글로벌 개발협력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코이카는 창립 30년에 만에 '예산 1조 원 시대'를 눈앞에(9천722억 원) 두고 있다.
손 이사장은 20여 년간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학자, 정부 기관, 학회, 국제기구, 시민사회(NGO)에서 활동하면서 '개발협력 전문가'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ODA에 대한 대국민 인식 개선을 비롯해 실효성 높은 사업 발굴, 공여국인 한국과 수혜국인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 간 서로 상생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손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 올해 코이카의 ODA 중점 대상국과 사업 분야는.
▲ 정부는 올해 1월 '제3기 ODA 중점협력국으로 27개국을 발표했는데 이 중 신남방·신북방 국가들이 주요 대상국으로 선정됐다.
이에 발맞춰 신남방 지역 사업 예산을 1천359억 원, 신북방을 367억 원으로 각각 책정했다. 이 예산은 지난해와 비교해 각 22.5%, 36.7% 증가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 포괄적 보건 의료협력, 인적개발, 문화교류, 농어촌·도시 개발, 미래산업 육성, 비전통 안보 분야 협력 등 6개 분야를 기반으로 디지털·고등교육·평화 농촌 개발·도시개발·교통 ODA에 집중할 계획이다.
후자는 K-방역 거버넌스 구축이 핵심이다. 코로나19 회복력 강화에 중점을 둔 'ABC 프로그램'을 올해도 실시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은 'Action to Fragility'(보건의료 취약국 지원), 'Building Capacity'(개도국 감염병 관리 역량 강화), 'Comprehensive Cooperation'(한국의 경험 활용 글로벌 연대강화)을 의미한다.
올해는 '긴급대응' 보다는 '감염병 관리'와 '보건 역량 강화'에 무게 중심을 둘 계획이다.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코이카가 육성한 감염병 역학조사관이 코로나19 상황에서 큰 활약을 펼쳤던 것처럼 보건 시스템을 갖추고 역량을 키우는 사업을 더 확대한다.
감염병 발발과 무관하지 않은 기후변화 위기와 생태계 파괴 방지를 위해 '기후감염병위기 대응실'을 신설해 그린뉴딜 ODA를 선도할 계획이다.
또 포괄적 긴급지원 프로그램을 포함해 K-방역에 617억 원을 투입한다.
시민공공외교를 강화하기 위해 민관협력 ODA 규모도 지난해 345억 원에 380억 원으로 증액했다. 시민사회협력 비중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우수 파트너를 육성하고 역량과 전문성이 고려된 '맞춤형 플랫폼 구축'에 힘쓰겠다.
-- '디지털전환특별반'을 신설했다고 들었다.
▲ 비대면이 장기화·일상화되면서 코이카 업무와 개발협력 사업 방식 모두 변해야 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ODA 사업 발굴과 관리, 회의·협업 등 모든 과정에서 '디지털화·원격화'가 필요해졌다. 이를 위해 5개년 계획으로 '디지털 ODA 사업추진 전략'을 세웠고, 그 하나로 출범한 조직이다.
해외 봉사단 운영과 개도국 인사 초청연수에도 온라인 방식을 적극 도입할 것이다.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조기 귀국한 봉사단원들이 온라인을 활용해 28개국에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봉사를 마무리했다. 개도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국내 초청 연수도 디지털 수업으로 대체해 43개국에서 1천450명이 교육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디지털을 활용한 원격 봉사와 연수는 대상과 분야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 국내 기업들의 ODA 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 예산을 대폭 늘렸다는데.
▲ 3천609억 원 규모다. 기업들이 이를 발판으로 1천800억 달러(199조 2천600억 원) 규모의 세계 ODA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158건의 상담서비스를 했고, 37개 기관에 일대일 컨설팅을 제공했다. 올해는 '기업진출지원센터'를 설립해 국제입찰 정보 제공, 지역별 ODA 조달 설명회, 기업 컨설팅, 채용 촉진 상담회 등을 할 것이다.
또 한국 혁신기업과 개도국 일자리 창출을 연계하는 기술지원 프로그램과 포용적 비즈니스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ODA 청년혁신가 양성을 위한 청년 창업지원 공간인 '이노포트'를 더 많이 운영할 예정이다.
국민 제안으로 '국제개발협력 기업진출 지원센터' 신설과 현지 사정 이해를 돕는 '해외연수생-중소기업 간 만남의 장'도 마련한다.
-- 코로나19로 국내 상황이 어려워지자 ODA 관련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 한국은 1인당 ODA 부담액이 연간 46달러다. 5만 원이 약간 넘는 돈이다. 노르웨이(799달러), 스웨덴(572달러), 덴마크(446달러)는 우리보다 10∼20배 많다. 29개 선진공여국 기관들의 모임인 'OECD 개발원조위원회(OECD DAC)' 평균인 144달러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의 재정 여건이나 국내 상황을 도외시하고 ODA를 할 수는 없지만 많은 국민이 ODA의 필요성을 지지하고 있다.
지난해 대국민 ODA인지도 조사에 의하면 '개도국에 ODA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사람이 57.2%, '개도국 빈곤퇴치와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찬성한다'가 6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과거 우리도 원조를 받았기에 갚아야 한다'가 44%였고, '국제사회 안정과 평화 공존에 기여'(20.4%), '개도국 빈곤 문제 해결'(18.2%), '한국 외교와 기업진출에 도움 되기 때문'(17%) 등의 순이었다.
미국의 핵심 대외정책은 '외교·국방·개발협력'이다. 영국에선 국가안보회의에 개발협력장관이 참여한다. 개발협력이 선진 주요국에서 대외전략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봉사와 자선, 서비스로 여겨지고 있는 개발협력을 보다 전략적인 관점에서 국정과제인 '협력과 연대를 활용한 글로벌 가치 추구와 상생의 국익 실현'과 결부하도록 ODA를 펼치려고 한다.
'원조를 통한 국익 추구'가 국제적 흐름이지만 그냥 '국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수혜국인 개도국 모두의 이익에 집중하겠다.
-- '한국적 ODA'는 무엇인가.
▲ 한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발전했다. ODA 규모도 25억2천만 달러(2조8천억 원)로 OECD DAC 기준 15위이며 지난 10년간 ODA 증가율이 11.9%로 회원국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위상이 커졌다.
초창기 연수생을 초청하고 전문가와 봉사단을 파견하는 '사람을 데려오고, 사람을 내보내는' 형태에서 국가별 협력, 시민사회 협력, 인도적 지원, 인재 양성, 국제기구 협력, 혁신적 개발협력, 국제질병퇴치기금 등으로 다양해졌다.
사업 내용도 단순히 봉사·자선 성격이 강한 '도움을 준다'에 그치지 않고 SDGs 달성 촉진, 상생의 개발협력 생태계 육성, 융합과 협업의 파트너십, 사회적 가치 중심 경영 등 질적으로 성장했다.
개발협력 가치와 방향을 빈곤 탈피와 소득수준 향상에서 인권, 성평등, 환경 문제까지 고려하기 위해 사업발굴 단계에서부터 환경적·사회적·인권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세이프가드도 마련했다.
창립 30년이 흐르면서 국제사회에서 ODA 흐름을 주도할 경험과 역량이 충분히 쌓였다. 한국은 다른 공여국과 달리 개도국을 식민지로 지배하지 않았고, 원조를 받아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일궈내 공여국으로 바뀐 경험이 있다. 이는 개도국에 '가진 것도 없는 작은 나라인 한국이 해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르완다는 한국을 발전 모델로 삼고 2018년에는 우리 기업인 KT와 합작해 LTE(Long Term Evolution·4세대 이동통신) 전국망을 구축하는 등 협력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강대국보다 ODA 규모는 작지만 헤게모니 경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와의 협력을 희망하는 개도국이 많다. 사람(People)·평화(Peace)·상생번영(Prosperity)·지구환경(Planet)이라는 4P 원칙을 지켜나간다면 더 많은 개도국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취임 이래 줄곧 임직원의 전문성 강화를 강조해온 이유는.
▲ 코이카는 무상원조 경험과 전문성을 갖고 있지만 그 경험과 지식이 제대로 구현되는 데 부족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발협력 파트너들이 타고 내리는 정거장인 '플랫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파급효과가 큰 사업 발굴과 효율적인 관리, 체계적인 평가가 선순환하기 위해서는 직원과 기관 모두 높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취임 후 두 달간 전체 직원의 절반인 250여 명과 그룹별·직급별 간담회를 했고 해외사무소 화상 면담과 희망자 개별 면담도 진행했다. 4월까지 모든 직원과 만나 목소리를 들을 계획이다.
인사는 경영자의 몫이라는 추상적인 근거 대신에 기조와 원칙도 세웠다. 구성원이 비전을 갖고 5년 후 10년 후의 자기 모습을 그릴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려고 한다.
국제사회 흐름과 동떨어져서는 ODA를 선도할 수 없다. 발전을 위한 요소라기보다는 생존의 문제라는 절박함을 갖고 기획력을 키워 사업과 파트너를 발굴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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