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힘든거 없니?" 상사의 위력추행.. 벌금은 옛말, 집행유예 '뚜렷'
경기도 화성시 소재 모 대학교 제과제빵과 실습교수 A씨는 2016년 11월 16일 강의실 밖 복도에서 학생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학생 B의 엉덩이를 치고 쓰다듬었다. 병원에서 막 퇴원한 학생이 링거주사를 많이 맞아 팔과 엉덩이가 아프다고 말하자 엉덩이를 쓰다듬은 것이다.
A씨의 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7년 2월에는 자신의 싼타페 차량에서 피해자의 허벅지와 종아리를 만지면서 추행했고, 피해자의 몸을 껴안기도 했다. A씨는 B씨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추행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학생들의 몸을 만지거나 뺨에 입을 맞추는 식으로 추행했다.
수원지방법원은 2019년 A씨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위력추행) 혐의를 인정해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벌금형으로 끝내지 않고 집행유예형을 선고한 것이다. 재판부는 "교수의 지위에서 갓 성년이 된 제자들을 추행했고, 장기간 다수의 피해자들을 상대로 한 범행이어서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위력추행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엄격해지고 있다. 위력추행은 성폭력처벌법 제10조에 명시된 것으로 업무·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해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처벌 조항이다.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을, 교수가 학생을, 목사가 신도를, 의사가 환자를 추행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대중들 사이에서 위력추행의 인지도가 높아진(?) 계기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이었다. 2019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의 형을 확정받은 안 전 지사에게 적용된 혐의는 피감독자 간음, 위력추행, 강제추행 등이다.
과거에는 위력추행이 벌금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A씨의 사례나 안 전 지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최근에는 위력추행에 대해서도 집행유예형이나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비즈가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이 제공하는 인공지능(AI) 기반 '형량예측서비스'를 활용해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위력추행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문 115건을 입수해 실제 선고 형량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분석해 본 결과, 벌금형보다 집행유예형이 선고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출시된 일반인 버전의 '로톡 형량예측' 서비스를 변호사 전용으로 개선해 예측형량·형량분포 등을 3배 이상 자세하게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며 "형량 선고 추세 서비스를 통해 특정 혐의에 선고되는 형량이 점점 무거워지는지 아니면 가벼워지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3~2014년에는 위력추행에 대해 벌금형만 선고됐다. 벌금 300만원과 벌금 500만원이 각각 33%로 가장 많았고, 벌금 400만원(22%), 벌금 200만원(11%)의 순이었다. 집행유예형이나 실형은 선고되지 않았다.
2015~2016년이 돼야 비로소 집행유예형이나 실형이 등장한다. 예컨대 2015년 10월 부산지방법원은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온 피해자(여·21)의 신체수색을 해야 한다며 추행한 직업중개업소 대표 B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15~2016년 기간에 위력추행에 대해 집행유예형이 선고된 비율은 22%였다. 여전히 벌금형 비율이 높았지만 집행유예형으로 점차 선고 형량이 높아지는 추세가 뚜렷했다.
2017~2018년에는 집행유예형이 벌금형보다 많아졌다. 이 기간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비율이 33%에 달했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비율도 각각 13%, 10%였다. 벌금형이 선고된 비율은 44%에 불과했다.
2019년에는 벌금형 비율이 38%로 더 줄었다. 특히 200만~400만원의 벌금형은 아예 선고되지 않았다. 벌금형은 모두 500만원이었다. 벌금형 안에서도 형량이 높아진 모습이다.
집행유예형도 마찬가지다.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비율이 13%였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비율이 각각 25%로 절반을 차지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위력추행에 대해 폭넓게 범죄를 인정하는 추세가 뚜렷하다고 보고 있다. 직접적인 고용 관계가 아니더라도 위력이 영향을 미친다고 보거나 '위력의 존재 자체가 행사'라는 개념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위력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힘이나 세력으로 풀이되는데, 위력이 존재하는데 반드시 직접적인 고용 관계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위력추행 범죄 건수 자체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위력추행 사건을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건수는 2011년 64건에서 2019년 220건으로 늘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 조항은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있었지만 위력에 대한 정의가 모호해 오랜 기간 주목받지 못했다"며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안희정 사건 등 굵직한 성범죄 사건에서 위력에 의한 간음이나 위력에 의한 추행이 인정받으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위력에 의한 성범죄를 놓고 다투는 일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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