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범죄자 얼굴은 왜 다 남자였을까

유동주 기자 2021. 2. 1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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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신상공개' 성별 역차별 주장..고유정마저 '얼굴사진' 제대로 찍힌 적 없어
양부모 학대로 16개월만에 숨진 정인이 사건 첫 재판을 이틀 앞둔 11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검찰청 담장 앞에 정인양의 추모와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하는 근조화환이 설치돼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정인이'사건을 계기로 범죄자 신상공개에 남녀차별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강력 범죄를 저지른 남성 피의자에 대해선 얼굴 등 신상이 공개되는 반면, 여성 피의자 신상공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인이 양모(養母)'에 대한 신상공개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여성범죄자'에 대해선 신상공개가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SNS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신상공개 결정권을 가진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이 '남성범죄자'에 대해서만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는 의견도 힘을 받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선 정인이 양부모에 대해 신상공개를 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미 정인이 양모는 재판에 넘겨져 수사기관에 의한 신상공개는 불가능해졌다. 온라인에선 쉽게 정인이 양부모의 실명과 직장정보 등을 찾아볼 수 있지만, 국가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신상을 공개하는 것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여파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돼 2010년부터 강력범죄 피의자의 얼굴 공개 기준이 세워졌다. 이 법에선 '성폭력·살인·강간·강도' 등 특정 강력범죄 피의자에 대해 얼굴 공개가 허용되도록 하고 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신상공개 기준은 △범행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강력범죄 사건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이 법을 근거로 신상공개된 범죄자 중 여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일한 예가 '고유정'이다.

변경석, 장대호 등 "배경없고 만만한 남성 피의자들만 쉽게 공개됐다"
고유정 외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근거해 신상공개가 된 범죄자(공개 당시엔 피의자)들은 모두 남자였다.

초등학교 여학생 납치 성폭행범 김수철, 수원 토막 살인범 오원춘, 대구 여대생 살인범 조명훈, 팔달산 토막살인범 박춘풍, 시흥시 시화호 토막 살인범 김하일, 안산 살인인질극 사건 김상훈, 대부도 토막살인범 조성호, 수락산 등산객 살인범 김학봉, 용인 일가족 살인사건 김성관, '어금니 아빠' 이영학, 노래방 살인사건 변경석,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김성수, 한강 몸통시신 사건 장대호,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사건 안인득, 이희진 부모 살인사건 김다운, 연쇄살인범 최신종, 옛 연인 중국동포 토막 살인범 유동수 등이 법에 근거해 얼굴이 공개된 피의자들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강력사건을 저지른 흉악범들이었다. 그런데 사건 내용에 비해 너무 쉽게 신상이 공개된 경우도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변경석, 장대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계획 범죄도 아니었고 손님과의 다툼 끝에 살해를 한 우발적 사건이었음에도 얼굴까지 신상공개가 됐다.

변경석과 장대호에 대해 신상공개가 결정됐을 때 '배경없고 만만한 남성 피의자들이라 쉽게 공개됐다'는 비판도 있었다.

2017년 창원 골프장 주부 납치살해사건에서 주범 심천우의 범행을 도왔던 '여성' 공범 강정임도 구속된 뒤 경찰에 의해 공식적으로 신상공개가 됐다. 하지만 이미 공개수배를 통해 언론에 얼굴과 이름이 널리 공개된 뒤라 사실상 의미없는 형식적인 신상공개였다.

따라서 고유정을 신상공개 대상이 된 강력범죄를 저지른 유일한 여성 피의자로 볼 수 있다.

노래방 도우미를 교체해달라는 손님과 말다툼 끝에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유기한 변경석씨(34·노래방 업주)가 29일 오후 경기도 안양동안경찰서에서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으로 송치되고 있다. 2018.8.29/뉴스1

신상공개된 범죄자 중 유일한 '여성' 고유정, 한번도 제대로 '얼굴' 공개된 적 없어
게다가 고유정의 얼굴공개 과정도 얼굴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던 다른 남성 피의자들과는 달랐다. 경기 김포에서 긴급체포 돼 제주에서 구속이후 기소와 재판과정을 모두 거치는 동안에도 고유정 얼굴 사진은 제대로 찍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고유정이 제주 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조사실로 이동 중에 촬영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찍힌 동영상 캡쳐본이 '유일한' 고유정의 얼굴 사진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해당 사진도 찍힌 과정이 석연치 않다. 경찰이 신상공개 결정 뒤, 고유정이 해당 결정에 대한 집행정지까지 신청하면서 얼굴공개를 이틀간 거부했다. 그로 인해 여론이 악화되자 초동수사 실패로 이미 비난을 받던 경찰이 경찰서 내부를 이동중인 고유정을 몰래 찍다시피 한 급조한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고유정은 그 이후엔 제주지검으로 이동하던 때나 제주구치소와 제주법원 법정을 드나들 때 항상 머리를 풀러 얼굴을 전부 가려 얼굴 공개를 피할 수 있었다.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전 남편살인사건 피고인 고유정(36)이 2일 제주지방법원에서 2차 공판을 받기위해 교도소 호송버스에서 내려 건물 안에 들어가고 있다. 2019.9.2/뉴스1

같은 '미성년자'인데 인천 초등생 토막살인 김양과 박양은 '신상보호', '부따' 강훈 '얼굴공개'
8살 초등학생을 유괴해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의 공범 박모양과 김모양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살인방조 등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8.4.30/사진=뉴스1
여성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론 2017년 3월 인천에서 초등학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내 훼손한 뒤 유기한 주범 김모양(당시 만 17세)과 공범 박모양(당시 만 18세)에 대해 신상공개를 해야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이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신상공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인천 초등학생 살해사건과는 대조적으로 ‘박사방’ 운영에 가담한 공범 ‘부따’ 강훈에 대해선 사건당시 기준으로 만18세 미성년자임에도 경찰이 무리하게 신상을 공개한 바 있다.

강훈에 대해선 당시 법조인, 대학교수 등 외부위원 4명과 경찰관 3명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는 “미성년자인 피의자(강훈)가 신상공개로 입게 될 인권침해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으나, 국민의 알 권리, 동종범죄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차원에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므로 피의자의 성명, 나이, 얼굴을 공개하기로 심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만 18세로 성폭력특례법에 의해선 신상공개를 할 수 없었던 강훈에 대해 '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1일을 맞이한 사람은 청소년에서 제외한다'는 '청소년보호법'의 예외 규정까지 끌어왔다.

하지만 강훈에 대한 이런 결정에 대해 '원칙 없는 포퓰리즘성 신상공개'란 비판이 있었다. '박사방' 사건이 아니었다면 과연 강훈 나이의 미성년자를 신상공개했겠느냐는 것이다. 경찰이 적용한 청소년보호법 예외규정도 원래 취지는 미성년자에게 취업 등에서 성년과 같은 혜택을 주기 위해 만든 것으로 청소년에게 유리하게 적용하기 위한 예외규정이다.

이 예외규정을 형사적 제재로 하는 신상공개에 갖다 붙인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박사방 피의자들을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경찰의 원칙없는 신상공개는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못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신상공개 사실상 '경찰 재량'…'여성 범죄자' 얼굴공개 꺼린다는 오해 스스로 만들어
결국 얼굴 공개여부는 전적으로 수사당국 재량에 달려있다. 정인이 양모의 경우, 경찰이나 검찰이 사건 초기에 '살인죄' 혐의를 적용했다면 '신상공개'가 가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동학대치사'로 혐의를 국한시키면서 신상공개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수사기관 스스로 낮췄다. 첫 공판에서 뒤늦게 검찰은 양모에 대해 살인죄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공소장 변경을 했지만, 신상공개 절차는 이미 놓친 후였다.

법에 따른 피의자 신상공개는 '강행규정'조항이 아니다. "얼굴 공개 등을 할 수 있다"고 돼 있어 '임의규정'으로 본다. 수사기관 재량에 따라 신상공개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수사기관은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사건마다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 점은 그간 신상공개를 둘러싼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강력 범죄의 유형과 비난가능성에 대한 '정량적' 판단이 아니라 경찰이나 검찰의 입장이나 여론 등 '정성적' 고려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지난 2016년 어버이날 친부를 무참히 살해한 남매는 스스로 신상공개를 원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들에게 마스크와 모자를 쓰게하는 방법으로 얼굴을 적극적으로 가렸다. 이동 중 남매는 스스로 마스크를 벗고 모여든 언론사 카메라 앞에 서며 언론에 그대로 얼굴이 노출되길 원했다. 그럼에도, 경찰이 언론에 협조를 구해 결국 모자이크 처리된 채로 보도해달라고 요청했고 대부분 그대로 얼굴을 가린 채 보도됐다.

이 사건은 경찰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피의자의 얼굴을 가리는 모습을 보여줘 논쟁거리가 됐다. 피의자 스스로 원치 않는 본인의 인격권 보호를 왜 굳이 경찰이 하느냐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때에 따라서 초기 수사가 잘못돼 경찰에 대한 비난가능성이 높은 경우에 시선을 돌리기 위해 성급하게 피의자 신상공개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美·英·日 등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 공개로 '국민 알권리' 우선시
미국은 '피의사실공표죄'가 없어 피의자 체포시부터 언론에 얼굴이 그대로 공개된다. 영국이나 일본도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을 대부분 공개하는 등 국민의 '알 권리(right of know)'를 우선시한다.

한 경찰행정 전문가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피의자에게 일괄적으로 마스크와 모자 등을 제공해 적극적으로 인격권을 보호하는 경우는 없다"며 "일부 인권단체 등의 질책이나 여론을 지나치게 민감하게 보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강력 사건으로 언론에 보도되는 범죄자 중 다수가 남성이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신상공개가 된 것은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면서도 "그런데 여성 범죄자에 의한 강력사건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 이제까지 고유정 외엔 신상공개가 안 됐단 점은 수사기관이 여성 범죄자의 얼굴 공개 등에 대해선 남성보다 더 민감하게 여기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만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수사기관이 강력범죄자의 성별이나 배경을 고려하지 않도록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피의자에 대해선 '신상공개'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대 국회에선 살인, 강간, 아동성폭행 등 흉악범의 신상정보를 원칙적으로 공개토록 하는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현재 "공개할 수 있다"로 돼 있는 해당 조항 문구를 "공개하여야 한다"로 바꾸는 내용이다. 이 법안에 대해 국회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은 "신상정보의 공개로 인해 헌법이 정하는 무죄추정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으며 피의자의 인격권, 프라이버시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들이 제도 도입 초기부터 지적된 바 있다"고 검토보고서를 냈다. 이후 법안은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고 그대로 폐기됐다.

'한강 토막살인' 피의자 장대호(39) 씨가 21일 오후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장씨는 지난 8일 오전 자신이 일하는 서울시 구로구 모텔에서 투숙객(32)와 다툼을 벌이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장씨는 시신을 훼손해 한강에 유기한 혐의도 받는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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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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