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증시는 가시밭길..美 가는 '1호 유니콘' 쿠팡

쿠팡, 2010년 창업 후 올해 美 뉴욕증시 상장
국내 상장 땐 경영권 보호장치 미비, 제값 받기 어려워
일찌감치 미국에 본사 두고 진출 발판 마련
"계획된 적자"..10년 만에 드러난 김범석의 '빅픽처'

[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국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계 최강자이자 1호 유니콘(1조원 이상 기업가치를 지닌 기업)인 쿠팡이 미국 증시 상장을 공식화했다. 쿠팡이 미국을 선택한 건 경영권을 보호해줄 차등의결권 제도가 국내에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누적 적자가 4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기업가치를 보수적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것도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김범석(오른쪽) 쿠팡 의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지난 2018년 11월 일본 도쿄 소프트뱅크그룹 본사에서 투자 계약을 체결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쿠팡 제공)

14일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상장 신청 서류에 따르면 쿠팡의 지난해 매출은 119억7000만 달러(13조2500억원)다. 전년(7조1000억원) 대비 두 배 가까운 약 91%, 7년 전인 2013년(478억원)보다는 약 277배 폭풍 성장했다. 이는 국내 최대 오프라인 유통망인 전국 이마트 매장의 지난해 매출(14조2138억원)과 맞먹는 규모다.

한 번이라도 쿠팡에서 제품을 구입한 적이 있는 활성 고객(active customer)은 지난해 4분기 기준 1480만명으로 집계됐다. 한국 인터넷 쇼핑 인구 3분의 1 가량이 쿠팡을 사용하는 셈이다.

반면 영업적자 규모는 2019년 6억4384만 달러(7100억원)에서 지난해 5억2773만 달러(5800억원)로 줄었다.

(그래픽=이동훈 기자)

업계에선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의 큰 그림이 이번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 과정에서 비로소 확인된 것으로 본다. 쿠팡은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흑자를 내본 적이 없다. 누적적자만 41억 달러(4조5000만원)에 이르지만, 쿠팡 측은 “계획된 적자”라며 과감한 투자를 지속했다.

김 의장은 커머스 사업뿐 아니라 배달, 미디어, 클라우드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아마존을 벤치마킹해 사업을 확장해왔다.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돼야 한다는 목표로 배송 혁신을 이뤄냈고 멤버십 서비스 및 간편 결제 도입, 신선식품과 음식 배달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를 위해 한국에 비해 상장 요건이 까다롭지 않아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도 경영권 방어에 유리한 미국 시장에 도전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쿠팡은 미국 뉴욕증시 상장을 신청하면서 창업자인 김 의장 보유 주식에 일반 주식 의결권의 29배에 해당하는 ‘차등의결권’을 부여한다고 신고했다.

차등의결권은 국내 시장에 도입돼 있지 않은 제도로, 벤처기업 창업자들의 경영권 방어에 유리하다. 김 의장이 2% 지분만 갖고 있어도 29배에 해당하는 58%의 지분 행사가 가능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

김 의장은 쿠팡 미국 증시 상장을 처음부터 염두에 둔 듯 본사(쿠팡LCC)도 미국에 뒀다. 쿠팡은 그동안 “적절한 때가 되면 IPO(기업공개)를 하겠다”고 밝혀 왔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매출이 두 배 가까이 뛰었고 미국 IPO 시장의 투자 열기가 계속되고 있는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쿠팡은 당초 알려진 나스닥이 아닌 뉴욕 증시에 상장 신청서를 공식 제출했다. 이르면 다음달께 증시 데뷔가 점쳐진다. 상장 후 기업가치는 최대 500억 달러(약 55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상장에 성공하면 쿠팡은 대규모 자금 조달을 통해 지금까지 해왔던 공격적인 투자를 국내외에서 계속해 나갈 전망이다. 한편으론 쿠팡의 적자 규모 탓에 흥행 여부를 속단하긴 어렵다는 평가도 따른다.

김범준 (yolo@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