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인정 20년] 당신이 난민을 혐오하는 그 이유, 가짜입니다
[난민 혐오 근거에 대한 팩트체크]
‘난민은 들이면 안 된다. 우리가 호구의 민족인가.’
최근 포털사이트의 난민 관련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이다.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포털의 성향을 막론하고 난민을 향한 반응은 엇비슷했다. 한국에서 이념과 세대, 성별을 가르지 않고 의견 일치를 보이는 몇 안 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난민. 좀더 구체적으로는 ‘난민 혐오’이다.
지난해 12월 유엔난민기구(UNHCR)와 한국리서치가 국내 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비율은 절반이 넘은 53%였다. 여성과 남성, 청년과 중·장년층 어떤 집단에서도 수용 찬성이 더 높은 경우는 없었다. 난민 수용 반대 이유는 경제적 부담(64%), 범죄 등 사회문제 우려(57%), 가짜 난민(49%) 등이 있었다.
유엔난민기구는 “반대 이유의 상위순위에 난민에 대한 오해와 가짜뉴스의 영향이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국일보는 국내에서 첫 난민 인정자가 나온지 20년이 되도록, 우리 사회의 난민 혐오에 자양분이 되어 온 주장들의 신빙성을 따져봤다.
①한국인에게 세금 걷어 난민에게 몽땅 쓴다?
2020년 기준 한국의 난민 정책 관련 예산은 24억6,700만원. 정부 총예산의 0.0004%에 해당한다. 또 예산의 절반 이상은 난민의 손에 직접 쥐어지는 것이 아니라 난민 심사 시 통역비나 출장비 등 행정 비용으로 쓰인다.
한국에 들어온 대다수의 난민 신청자들은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심사가 종료될 때까지 '알아서' 생활비를 마련해야 한다.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른 생계지원비(1인 가구 기준 월 43만원)를 신청할 수 있지만, 실제 지원을 받는 숫자는 전체 입국 난민 중 5% 정도다. 그마저도 6개월간만 지급된다.
난민으로 인정받는다면 이후 복지 혜택이 펑펑 들어간다는 지적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난민 인정 이후 별도의 정착금은 없고, 사회보장기본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 개별법이 인정할 경우 내국인과 비슷한 수준에서만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
②난민 받아주면 범죄가 늘어 나라가 엉망이 된다?
난민 범죄의 공식적인 통계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신혜인 유엔난민기구 공보관은 "그런 통계 자체가 차별적인 심증을 가지고 진행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난민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를 경우 체류 기한 연장 및 난민 인정 등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내국인들보다 더 몸을 사리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실제 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서 지난 5년간(2014~2018년) 인구 10만명당 범죄자 검거인원 지수가 높았던 상위 3개국은 몽골과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이었다. 난민 신청 건수 상위국(러시아·이집트·카자흐스탄·말레이시아·방글라데시)과는 거리가 멀다.
난민이 아닌 외국인으로 대상을 넓혀도 범죄율(2019년 기준ㆍ경찰청)은 내국인(3.04%)이 외국인(1.28%)보다 훨씬 높다. 전체 검거 인원(158만여명) 중 단 2.2%(3만6,400명)만이 외국인이었다.
외국인은 전체 범죄 중에서 강력 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이 일반범죄에 비해 더 높지만 이 또한 눈에 띄는 큰 차이는 아니다. 외국인 범죄 중 살인·강도·강간·강제추행 등 강력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2.4%, 내국은 그 비율이 1.8%이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외국인 범죄자 중에서 살인(0.3%)과 강도(0.2%), 강간 및 강제추행(2.4%)의 비율은 내국인 범죄자 중 살인(0.05%), 강도(0.07%), 강간 및 강제추행(1.6%)을 앞섰다. 그러나 이는 범죄자 중에서의 비율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실제 인구 10만명당 검거인원지수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살인을 제외한 강도, 강간 및 강제추행 등의 강력 범죄에서 내국인의 검거인원지수가 더 높았다. 내국인은 10만명 당 47명이 강간 및 강제추행으로 검거됐다면, 외국인은 28명이었다. 강도 역시 내국인(2.1명)이 외국인(1.8명)보다 높았다. 살인의 경우 10만명당 내국인 1.5명, 외국인 3.0명이었다. 무엇보다 이 통계들은 직접적인 난민 통계가 아님을 거듭 명심할 필요가 있다.
③난민의 대부분이 '가짜 난민'이다?
국내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접수된 난민 신청 건수는 6,684명이며, 이 기간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신청자는 69명뿐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난민 인정률은 단 1%이며, 체류기간 등에 제한이 있는 인도적 체류 허가도 155명에 그쳤다.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대부분 1차 심사에서 신청이 기각된다"라며 "이른바 가짜 난민이 인정 심사를 통과할 확률은 거의 없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난민 인정 문턱을 더 높이고 있다. 과거 난민 인정 신청을 했다가 난민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부적격 결정 또는 난민 불인정 결정을 받은 사람이 중대한 사정변경 없이 재신청하면 심사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난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경우 이의신청이나 행정심판의 길도 막히게 된다. 난민 관련 활동가들은 "외국인이 취업 등 경제적 목적을 위해 한국에서 '가짜 난민' 행세를 하는 일은 시쳇말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선택"이라고 입을 모았다.
④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돈 벌러 왔다?
경제적인 곤궁은 난민법상 난민의 정의에 해당하지 않는다. 난민법에서는 난민을 인종이나 종교, 국적,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거나 그럴 위험이 있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는 외국인이라 가리킨다. 고국에서 궁핍에 시달린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로 가서 난민 신청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한국일보가 최근 11년(2010~2020년) 간 언론에 소개된 난민 인정자 및 신청자 중 출신국에서의 직업이 드러난 88인을 살펴본 결과, 종교인과 인권활동가(16명)가 가장 많았다. 대학생·유학생(10명)이 그 뒤를 이었고, 교사(9명), 운동선수(8명), 사업가(7명), 언론인(5명), 정치인과 공무원(각 4명) 순이었다. 변호사(2명)나 회계사(1명), 간호사(3명) 등 전문직도 적지 않았다.
이 밖에도 건축가나 경호원, 군인·경찰, 항공사 직원, 엔지니어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던 이들은 내전 등을 이유로 정든 고향에서 떠밀려 나와야 했다.
⑤난민 때문에 유럽 등 선진국이 골머리를 썩는다?
전 세계 난민 10명 중 8명(85%)은 고국과 인접한 저소득·개발도상국에 체류(유럽난민기구 2019 글로벌 동향보고서)하고 있다. 난민 비호 상위 5개국은 터키(360만명), 콜롬비아(180만명), 파키스탄과 우간다(각 140만명), 독일(110만명) 순이다. 적극적인 난민 수용 정책을 벌인 독일을 제외하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서방 선진국이 아니라 출신국 주변의 개발도상국이 난민의 대부분을 수용하는 셈이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 대표는 이런 현상을 두고 로이터통신을 통해 "유럽이 난민으로 비상사태라거나 미국·호주가 그렇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난민 대부분은 전쟁터 옆의 국가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말해서 유럽에 오는 난민의 수는 감당할 만하다"라고 강조했다. 한국 역시 전 세계 난민 4,570만명 중 국내로 온 누적 난민 신청자(1994~2020년)는 7만1,000여명(0.15%) 수준이다.
통계를 보면 난민에 대해 제대로 알수록 포용력 또한 높아진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건 직후(24%)보다 지난 해 조사에서 난민을 수용하자는 응답은 9%포인트 늘어난 33%였다. 이는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비롯해 난민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수준(10%포인트 안팎)과 유사한 수치다. 예멘 난민에 대한 이해도는 40%에서 50%로 증가했고, 난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도 26%에서 37%로 올랐다.
난민 분야 공익 활동가인 황필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는 "한 발만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제3자라고 생각하는 난민에 대한 이해도 넓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또 타자인 난민을 왜 도와야 하냐는 물음은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 본인 역시 도움이 필요해졌을 때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과 연결된다"라고 덧붙였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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