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 띄운 드론이 원격 답사, 서울 KIC 본사 "투자해도 되겠어"

김신영 기자 2021. 2. 15.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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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외화자산 200조 운용 국부펀드 KIC가 작년 23조 최고수익 낸 비결

지난해 5월 중국 상하이(上海) 인근 한 중소 도시의 공사장 위로 드론이 날아올랐다. 카메라를 장착한 이 드론은 넓고 편평한 건물을 짓고 있는 공사 현장을 두루 살피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이날 드론이 모은 이미지는 국경을 넘어, 대한민국 서울 남산 인근의 한국투자공사(KIC) 운용 본부로 전송됐다.

드론으로 찍은 中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 - 지난해 5월 중국 상하이 인근의 한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을 드론이 촬영한 사진. 한국투자공사(KIC)는 이런 드론 이미지를 토대로 데이터센터 투자를 결정했다. /KIC

“이 정도면 완공 일정이 미뤄지진 않겠습니다” “옆에 강이 흐르는군요. 데이터센터 위치로는 나쁘지 않은데요”…. 몇 달 후 KIC는 중국에 지어질 예정인 약 13억달러짜리 데이터센터 건설 프로젝트에 공동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데이터센터는 최근 중국의 인터넷 기반 시설이 빠르게 확장되면서 투자 가치가 뛰는 중이다.

◇코로나로 출장길 막히자 드론 출동

코로나 팬데믹은 글로벌 투자를 많이 하는 각 나라의 국부펀드에 ‘족쇄’가 되었다. 주식 등 전통적인 투자 대상이 아니라 부동산 등 대체 투자를 하려면 현장 답사가 필수인데 해외 출장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지난해 8월 “코로나가 국부펀드에 종말을 불러올지 모른다”라고 전망할 정도였다. 그런데 한국의 국부펀드 KIC는 오히려 지난해 역대 최고 수익을 올렸다. 출장·탐방이 중단됐지만 ‘알짜 투자처’를 어떻게든 발굴하기 위해 드론 같은 첨단 기술을 총동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KIC는 정부·한국은행 등이 보유한 외화 자산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기관이다. 약 200조원을 굴린다. 지난해 수익률 13.7%를 기록해 218억달러(약 23조7000억원)를 벌어들였다. 벤치마크(상대적인 투자 성과 비교를 위한 기준, KIC는 ‘주요 7국 물가상승률+3%포인트’를 씀) 대비 초과 수익률은 1.44%포인트로 역대 최고였다.

KIC 운용 자산 규모

KIC 이훈 운용전략본부장은 “지난해는 코로나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한 해였다. 투자 결정에 필요한 활동을 최대한 빨리 비대면으로 전환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드론 부동산 답사’도 그렇게 나온 아이디어였다. 이를 위해 KIC는 규정까지 바꿨다. KIC의 ‘위탁자산 운용 세칙’은 신중한 투자 결정을 위해 해외 투자처의 경우 반드시 ‘현지 실사’를 하도록 정해두고 있었다. 코로나 확산 직후인 지난해 3월, KIC는 드론 답사 등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엔 다른 방법으로 갈음할 수 있다’는 조건을 더했다. 이 본부장은 “규정을 바꾸고 나서 부동산 물건 투자 판단 전 고화질 3D 카메라로 찍은 ‘가상 투어’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애완동물 언택트 서비스까지 뒤졌다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untact·비대면)’ 기술 확산 자체가 KIC의 수익률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KIC가 투자한 회사 중에 언택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애완동물 용품 온라인 쇼핑몰 ‘츄이(Chewy)’가 대표적이다. KIC는 2017년 즈음부터 스타트업 투자를 늘려 왔고 2018년 츄이에 투자했다. ‘사료 구독’ 같은 독특한 온라인 서비스가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 아래 내린 결정이었다. 코로나 확산으로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자 츄이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46%가 늘었다. 2019년 9월 상장한 츄이 주가는 현재 118달러로 1년 전(23달러)의 약 5배 넘는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KIC는 주식 투자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센서 등을 만든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KIC 최희남 사장은 “벤처·기술 투자를 확대하려 오는 3월쯤 실리콘밸리 사무소를 열 예정”이라며 “인공지능(AI)·우주산업·블록체인 등 신기술 관련 기업이 새 수익원이 될 수 있을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국부펀드 중에도 초저금리와 코로나라는 ‘더블 악재’에 대응하려 새 투자처 발굴에 나선 곳들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는 미국의 전기차 스타트업 루시드모터스 지분을 2019년 67% 사들였는데 최근엔 아예 공장을 사우디로 유치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자국의 원유를 팔아 재원을 마련하면서도 원유 관련 산업 투자를 모두 청산하고 이를 재생에너지로 돌릴 예정이라고 지난달 말 발표했다. 원유 가격이 너무 불안정하다는 점을 투자 전환 이유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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