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예산 줄이고 확대정책 폐기하라"

박세미 기자 2021. 2. 15.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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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청 싱크탱크, 공개 비판.. 시험 없애며 학력저하 등 부작용

“혁신학교 예산 지원을 줄이고, 양적 확대 정책은 폐기한다. 모든 학생이 ‘적정 학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싱크탱크인 서울교육연구정보원이 지난달 펴낸 ‘서울혁신교육정책 10년 연구’ 보고서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혁신학교 한 곳당 국민 세금으로 연간 5000만원 넘게 들어가는 예산 지원을 줄이고, 더 이상 혁신학교를 늘리지 말라고 공개 주문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곽노현·조희연 서울시교육감으로 이어지는 10년 ‘진보 교육’을 진단하고, 앞으로 펼칠 교육 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을 담은 보고서다. 교육계에서는 “혁신학교를 대표 상품으로 내건좌파 교육에 대한 반성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혁신학교 지정 추이

보고서에선 ’10년 좌파 교육'을 진단한 뒤 대대적 방향 전환 필요성을 제시했다. 2010년 좌파 교육감 당선 이후 교육 당국이 혁신학교 팽창, 중간·기말 시험 폐지, 학생 인권 보장, 수평적인 학교 문화 등 ‘자율’에만 집중했지만, 앞으로는 혁신학교 확대 폐기, 학생들의 학력 보장, 교장의 리더십 강화 등 ‘책임’에 방점을 두고 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학교는 전국 초·중·고의 16%인 1942교가 지정돼 있다. 그동안 일반 학교보다 학력이 크게 떨어지는 등 부작용으로 학부모들의 기피 대상이 돼 왔다. 이 연구를 책임진 김용 한국교원대 교수는 “그동안 진보 교육계에는 혁신학교를 양적으로 확대하려 하고 시험을 금기시하거나 학력 얘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만연했다”며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기초 학력을 보장해주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 1월 발간된 ‘서울혁신교육정책 10년 연구’ 보고서는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한국교원대 연구팀에 의뢰해 작성됐다. 2010년 곽노현 교육감 당선 이후 10년 동안 이어진 ‘혁신 교육’의 성과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구성으로 돼 있다.

연구팀은 먼저 ‘좌파 교육의 상징'인 혁신학교에 대해 “서울 혁신 교육 정책의 대표”라면서도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연간 5700만원에 달하는 예산 지원을 줄이고, 양적 확대에만 집중한 정책을 폐기하라는 것이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신규 지정되는 혁신학교에 5700만원, 재지정되는 혁신학교에 4500만원의 예산을 별도로 주고 있다. 그동안 ‘혁신학교에 대한 특혜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다. 또 2011년 첫 지정을 시작으로 2014년 68곳에 불과했던 서울 시내 혁신학교가 2020년 226교로 6년간 3배 넘게 늘어나는 등 양적 팽창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이를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책임 연구자인 김용 교수는 “혁신학교 도입 10년이 지난 지금은 예산으로 유지하는 혁신학교는 의미가 없다”며 “지난 2018년 송파구 헬리오시티 학부모들 반대로 해누리 초·중학교의 혁신학교 지정이 좌초된 사례에서 보듯, 학부모 등이 지지하지 않는 혁신학교 지정은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식 습득보다 토론과 참여를 강조하는 혁신학교식 수업에 대해서도 “체험은 했지만 배움은 없는 교육에 그칠 수 있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동안 좌파 교육감들은 초등학교에서 중간·기말고사를 폐지하고,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전수 조사에서 표본 조사로 전환하는 등 ‘시험 치지 않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혁신학교의 기초 학력 미달 학생 비율(11.9%·2016년 학업성취도 평가)이 전국 평균(4.5%)의 2배가 넘는 등 그동안 혁신학교의 학력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연구진은 “아동이 학습에서 자신감을 갖는 것은 성장과 발달의 핵심”이라면서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유토리 교육’(여유 있는 교육)의 결과는 학력 저하와 격차 확대였다는 분석이 제시됐다”고 지적했다. 김용 교수는 “많은 진보 교육 인사가 ‘미래 교육은 ‘학력’이 아니라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라고 말하지만, 학력 없이 역량을 키운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앞으로 학교에서 아이들의 학력을 시험을 통해 반드시 확인하도록 하고, 부족한 아이들이 이를 갖추도록 거듭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학교는 교사의 수업 자율권 강화, 학생 인권 강화를 중시한다. 그러나 연구진은 “자율이 자칫 편의와 방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서울시교육청이 학생 인권 조례, 두발 자율화, 교복 자율화 등을 통해 학생 인권 강화에만 치우치는 동안 교권 침해 사례도 함께 늘고 있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김용 교수는 “학교 현장이 10년 전에 비해 민주화됐고 교사 간 의사소통도 수평적으로 변했지만, 막상 책임자인 교장들은 주눅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교장에게 일정한 수준의 인사권을 부여하는 등 교장 리더십은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선 “학력 저하, 혁신학교 반대 등에서 보이듯 사실상 좌파 교육이 실패한 부분에 대한 반성문이 나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를 이끈 김용 교수는 문재인 정부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등을 지낸 인사다. 실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올해부터 기초학력 지원 협업 강사를 초등 1~2학년 교실에 배치하는 등 학력 지원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연구 보고서는 혁신 교육 10년을 맞아 정책 수립에 참고하기 위해 의뢰한 것일 뿐”이라며 “이 때문에 당장 서울 교육의 정책 방향이 바뀌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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