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한 LG "합의금 합당해야" 압박.. SK '바이든 거부권' 기대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활용해 SK이노베이션이 생산한 리튬이온 배터리와 배터리 셀, 모듈, 팩, 소재의 미국 내 수입을 이 명령의 발효일로부터 10년간 금지한다.”
10일(현지 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전기자동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에 최종 패소 판결을 내렸다. 60일간의 대통령 심의기간 동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해당 판결은 곧바로 발효된다. 이 기간 동안 LG와 SK가 합의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 SK에 중징계, 유예기간은 부여
다만 ITC는 미국 자동차 업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유예조치를 내렸다. 이미 SK이노베이션과 배터리 납품 계약이 완료돼 2022년, 2023년부터 양산을 시작하는 폭스바겐, 포드의 일부 전기차 기종에 대해 각각 2년, 4년간 배터리 납품을 허용했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탑재해 미국에 수출된 기아 전기차의 배터리 교체 및 수리를 위한 수입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ITC의 결정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은 “30여 년간 수십조 원을 투자해 쌓아온 지식재산권을 보호받게 됐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ITC의 결정은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한 것이어서 아쉽다. 대통령 심의기간 동안 SK배터리와 미국 조지아 공장이 미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친환경 자동차 산업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수조 원 합의금 격차 좁혀질까
남은 시나리오는 세 가지다. 첫째,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수입금지 조치 효력은 상실된다. 이럴 경우 양 사의 ‘배터리 소송’은 델라웨어 연방법원에서 진행 중인 민사 소송에서 판가름 난다.
12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SK 공장이 위치한 미국 조지아주의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ITC의 최근 결정은 팬데믹 상황에서 SK의 2600개 청정에너지 일자리와 혁신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위험에 빠뜨린다”며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600여 건의 ITC 소송 중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는 단 한 건이다. 2013년 삼성전자가 애플에 제기한 특허권 침해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자국 기업인 애플의 손을 들어줬었다. ITC가 미국 산업 보호를 위한 유예기간을 둬 거부권 행사의 명분이 작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수입금지 조치가 발효되면 SK이노베이션은 연방고등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 하지만 최종심이 끝나는 1년여 동안 SK이노베이션은 수입금지로 인한 손해를 고스란히 안고 가야 한다.
이 때문에 양 사가 곧바로 합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양 사가 합의하면 ITC 수입금지 조치는 무효화된다. 큰 타격이 예상되는 SK는 협상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 LG도 법률 비용을 감안하면 ITC 결정을 지렛대로 삼아 빠른 시일 내에 합의하는 것이 낫다고 보고 있다. LG 측은 “(판결에) 부합하는 제안으로 하루 빨리 소송을 마무리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SK 측은 “유예기간 중에도 고객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합의금이다. 지난 2년 동안 LG가 최대 3조 원, SK가 최대 5000억∼6000억 원 선을 제시해 협상이 무산돼 왔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합의금을 높이라며 SK이노베이션을 압박했다. LG 측은 ITC 결정 직후인 11일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SK이노베이션의 기술 탈취 및 피해는 미국 지역에만 한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다른 지역에서의 소송은 기본적으로 SK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도 ITC 최종 결정 이후 보고서에서 추가 소송 가능성을 들어 “합의금이 5조 원 이상 될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배터리부문 매출이 1조6000억 원 수준에 그치고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수조 원에 이르는 합의금은 사실상 사업을 중단하란 뜻”이라며 LG의 요구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곽도영 now@donga.com·서동일·홍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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