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학과 로봇공학이 만나 척추 손상 환자에게 희망을 선물하다 [신경과학 저널클럽]
[경향신문]
척추 손상은 현대 의학이 대처할 수 없는 어려운 부상이라는 것이 통상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최근의 신경과학과 공학 기술을 접목한 발전은 척추 손상 환자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개막식에서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뇌·기계 접합 기술로 조절되는 외골격 형태의 로봇을 이용해 시축을 했던 장면을 많은 세계인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외부의 기계적·전기적 장비를 이용하여 신경계의 기능을 증진하거나 회복하는 기술을 ‘신경보철(Neuroprosthetic)’ 기술이라고 한다. 2018년 스위스 연방공대 그레고르 쿨틴 박사 연구진은 척추가 손상된 환자에게 발전된 형태의 신경보철 기술을 직접적으로 적용해 외골격 로봇의 도움 없이도 환자가 걸을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이런 놀라운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을 실제 환자에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연구진은 문제에 직면했다. 바로 혈압 조절이었다. 척수 신경은 움직이고자 하는 의도를 온몸의 근육에 전달해주는 역할도 하지만, 자율 신경계를 통해 우리 몸의 생리적 조절에 필요한 신호도 전달한다. 혈압 조절을 위해 자율 신경은 상황에 따라 혈관의 수축 정도를 변화시켜 혈압을 유지하기 때문에 척추가 손상되면 운동 기능과 함께 혈압 조절 기능도 크게 저하돼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쿨틴 박사는 캐나다 캘거리대의 애런 필립스 박사 연구진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사람을 대상으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해법을 찾을 수는 없기 때문에 연구진은 먼저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전임상 모델을 개발했다. 이를 위해 일정하게 쥐의 척추 신경을 손상할 수 있는 수술 기법을 정했고, 여기에서 혈압 변화를 관찰했다. 그리고 척추 손상 환자의 걸음걸이 회복 기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경막외 전기 자극’ 기술을 활용해 혈압을 조절할 수 있는 특정 지점이 있는지 탐색했다.
척추 여러 마디 중 가슴 쪽 척추 신경의 한 부분에 자율 신경의 세포체가 다수 존재하는데, 연구진은 이 부위를 전기 자극했을 때 혈압 변화를 관찰했다. 이 현상이 우연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신경세포의 종류와 활성을 특이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일련의 신경과학적 기법을 통해 가슴 쪽 척추의 경막외 전기 자극이 정말 자율 신경을 활성화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리고 생리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자극을 만들기 위해 광유전학적 방법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상적인 자극 조건을 발굴했다.
연구진은 나아가 쥐 모델에서 발굴한 기법을 영장류에서 검증했고, 마지막으로 척추 손상 환자에게 이 기술을 활용했다. 자극의 구체적 사항은 쥐와 달랐지만, 쥐와 영장류에서 쌓은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최적의 자극 위치와 자극 조건을 확립했다. 이 기술을 적용받은 환자는 혈압 조절에 어려움을 훨씬 적게 겪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재활에 매진할 수 있었다.
불과 3년 전 척추 손상 환자의 보행을 돕는 결정적 기술을 제시했던 쿨틴 박사 연구진이 진일보한 개념의 치료 기술을 짧은 시간 내에 임상 적용이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한 것에 경의를 보낸다. 이 연구를 발표한 국제학술지 ‘네이처’ 논문에는 학술지로는 예외적으로 해당 기술을 적용받은 환자의 인터뷰 영상이 보충자료로 제공되는데, 이는 신경과학 기술 발전에 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아직은 아주 제한적인 환자에게만 접근이 가능한 기술이지만, 가까운 장래에 관련 기술이 보편화돼 국내에서도 신경보철 기술의 발전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최한경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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