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모두 '불도저식' 부동산 공약..3년 만에 바뀐 서울 보선
[경향신문]
후보들, ‘부동산 민심이 승패 결정’ 판단 대규모 공급책 발표
짧은 임기 감안 땐 비현실적…전국 집값 등 시장 혼란 비판도
과대포장된 숫자 경쟁에 인구 1000만 도시 미래 비전도 실종
‘30만호’ ‘70만호’ ‘74만호’.
오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공급 일색’의 부동산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불과 3년 전 지방선거 당시 여야 후보가 10만호가량의 한정적인 공급대책을 낸 것과 비교해 대폭 늘어난 규모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실망한 민심 달래기가 선거 승패를 가를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여야 공히 ‘물량 공세’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불도저식 공급대책’으로 이어져 부동산시장에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적지 않게 나온다. ‘과대 포장’된 숫자들만 부각되다 보니 인구 1000만 서울시의 미래에 대한 후보들의 종합적인 ‘비전’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여야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을 끌어내리기 위한 공급 확대를 기본 전제로 깔았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는 ‘5년간 30만호 공급’과 평당 1000만원의 파격적인 공공분양주택 건설안을 제시했다. 당내 경쟁자인 우상호 예비후보는 강변북로와 철로를 지하화하고 인공부지로 덮어 그 위에 공공임대주택 16만호를 건설하겠다고 나섰다.
야권이 약속하는 규모는 더 크다. 나경원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연간 7만호씩 10년간 70만호 공급’을, 오세훈 예비후보는 ‘5년간 36만호’를 약속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5년간 74만6000호’를 장담했다. 조은희 국민의힘 예비후보도 ‘5년간 65만호’를 내놓았다.
반면 서로의 공약에 대해선 ‘엉터리’ ‘허황’ 등의 용어를 동원해 현실성이 결여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오 후보는 박 후보의 토지임대부 공급대책에 대해 “송파구 면적만큼 국공유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엉터리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우 후보는 안 후보와 국민의힘 공약을 “구체성이 결여된 허황된 공약이자 투기 조장 대책”이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공급 방식·철학 등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수십만호에 이르는 경쟁적인 공급정책 일색이라는 점은 여야가 일맥상통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매머드급 물량 공세’는 3년 전인 2018년 지방선거 때와 다르다. 당시에도 야권 후보들은 ‘규제 완화’를 내세우며 공급대책을 내놨지만 공급 규모는 현저하게 적었다. 안철수 당시 바른미래당 후보는 ‘반값 공공임대주택 10만호’ 계획을,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는 ‘공공주택 위주로 40만호’ 계획을 냈다. 민주당에서는 당시에도 출마했던 박·우 후보가 이번 선거와 달리 “무분별한 주택 공급 공약을 자제하자”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오히려 박원순 전 시장을 향해 “강남권에 재건축 허가를 해줘서 문재인 정부의 8·2 부동산대책에 부담을 줬다”고 날을 세웠다.
3년 만에 바뀐 여야의 공약 뒤에는 이번 선거가 ‘부동산 민심’으로 승패가 결정될 것이라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화 정책 실패에 대한 민심의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라는 측면에서다. 실제 리얼미터가 TBS와 YTN 의뢰로 여론조사한 결과(지난 7~8일 서울시민 1016명 대상·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확인), 응답자의 40%는 차기 서울시장이 중점을 둬야 할 현안으로 ‘부동산시장 안정’을 꼽았다.
그러나 이 같은 공약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실적이지 못한 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로·지하철 지하화는 선거철마다 나온 공약이지만 막대한 사업비와 사업성 부족으로 현실화하지 못했다. 야당 후보들이 주장하는 재개발·재건축 문제도 자칫 중앙정부와의 갈등이나 지역 간 형평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다. 유권자들 입장에서도 최근 쏟아져 나온 공약들이 제각각이다 보니 실제 실현 가능한 물량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국 집값을 주도하는 서울 지역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여야를 막론하고 남발한 공급책이 시장에 혼란을 가중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또 이번 선거에서 선출되는 서울시장 임기가 1년2개월가량에 불과하다는 점도 공약의 실현 가능성 문제로 제기된다. 임기 초반 시정 파악을 마친 뒤 또다시 2022년 차기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어 공약을 이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각 후보의 종합적인 ‘미래 비전’은 뒷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이 세계적 메카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주거기능 외에도 서울이라는 도시의 여러 기능과 성장동력을 고민해야 한다”며 “서울시 전체의 도시계획과 발전 방향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김상범·심진용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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