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만호 공급부터 신혼부부 1억원까지.. 끝모르는 선심성 공약 전쟁
[경향신문]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각 당 예비후보들의 공약 경쟁에 불이 붙었다. 여야 불문 부동산 공급과 현금 지원성 복지 공약을 앞다퉈 제시하고 있다. 부동산가 폭등, 코로나19 피해 등 현실 타개를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면 실현 가능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따른다. 4월 선거 당선자의 잔여 임기가 1년3개월 남짓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보다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만·30만·75만… 눈 돌아가는 부동산 공약
후보들의 공약은 우선 부동산에 집중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을 끌어내리기 위한 공급 확대를 기본 전제로 깔았다. 공급 규모와 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일 따름이다.
더불어민주당 최종 후보 2명으로 낙점된 박영선 후보와 우상호 후보는 지난 ‘2·4 부동산 대책’ 발표 전까지 공급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정부·여당 기조와 달리 대규모 주택 공급을 약속했다.
우선 박영선 후보가 우선 5년내 공공주택 30만호 공급을 다짐했다. 당내 경쟁자인 우상호 후보의 공공주택 16만호 공약을 ‘더블’로 받았다. 박 후보는 지난 1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아파트값 차이는 땅값에서 나온다”며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시유지나 국유지에 아파트를 지으면 땅값이 들지 않아 평당 1000만원으로 공공분양주택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상호 후보는 강변도로와 철길 위에 인공대지를 씌우고 그 위에 집을 짓는다는 구상이다. 지난달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인공대지 아이디어에 대해 프랑스·독일 등 사례를 거론하며 “우리나라도 세계최고 기술이 있는데 왜 안되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공약에 승부수를 던진 것은 야권도 마찬가지다. 공급규모 면에서는 여권을 압도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5년간 74만6000호 공급을 공약했다. 후보군 가운데 최대규모다. 74만호 가운데 10만호는 청년임대주택으로 짓고, 40만호는 3040세대와 5060세대 중심으로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나경원 국민의힘 후보는 10년간 70만호로 맞선다. 민간 40만호, 공공임대 20만호, 청년·신혼부부 10만호로 세분해 매년 7만호씩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같은당 오세훈 후보는 5년간 36만호 공급을 내걸었다. 뉴타운 활성화를 통한 18만5000호 공급을 중심으로 ‘상생주택’ ‘모아주택’ 등 새로운 아이디어도 내놨다. 이들 ‘빅 3’를 뒤쫓는 조은희 국민의힘 후보는 5년간 65만호 공급을 들고 나왔다.
후보별로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며 청사진을 그리고 있지만 ‘지르기’ 공약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비판이 많다. 당장 후보들끼리도 상대방의 공약을 실현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나경원 후보는 박영선 후보의 5년 30만호 공급을 “현실성 없다”고 비판했다. 30만호 공급을 위해 여의도 면적 17배의 땅이 필요한데, 어디서 그런 부지를 확보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나 후보의 ‘10년간 70만호’ 계획 역시 비판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나 후보가 70만호 가운데 10만호를 토지임대부 공공주택 형식으로 매년 1만호씩 공급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오세훈 후보는 “서울시에 남은 공공부지를 마른걸레 쥐어짜듯 모아도 1만5000가구 이상 공급은 어렵다”고 비판했다. 같은당 오신환 후보는 여야 후보들의 공급 계획을 ‘급조한 공약’으로 규정하고 “16만호·30만호·75만호 공급 등 어떤 후보가 어떤 얘기를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차별성이 없고 실현 불가능한 공약들이 쏟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적어도 비현실적인 얘기는 하지 않겠다”며 ‘반반아파트’ 3만호 공약을 제시했다.
■최대 1억원 지급… 현금 살포 경쟁도 과열
코로나19 피해가 커지면서 복지 부문 공약 경쟁도 과열 양상이다. 나경원 후보의 ‘결혼·출산 지원 공약’은 ‘나경영(나경원+허경영)’ 논란을 낳았다. 토지임대부 주택에 입주한 청년이 결혼해 아이까지 낳는다면 대출이자 대납으로 최대 1억1700만원을 지원한다는 파격적인 공약에 다른 후보들의 비판이 이어진다. 박영선 후보가 “근거 없는 퍼주기 공약”, 오신환 후보가 “얼핏 들으면 황당하고 자세히 보면 이상한 공약”이라고 공격했다. 나 후보가 박 후보의 비판에 “달나라 시장이 되려 하느냐”고 비판하자 우상호 후보가 “그러면 나 후보는 안드로메다 후보냐”라고 치받는 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나 후보가 1억원대 공약으로 집중 공세를 받고 있지만, 다른 후보들도 유사한 현금성 복지 공약을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박영선 후보가 소상공인지원과 서울사랑상품권 발행 명목으로 각각 1조원을 투입하겠다고 했고, 우상호 후보도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으로 100만원을 일괄 지원했다고 약속했다. 오신환 후보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최대 500만원 지원 공약을 준비했고, 안철수 후보는 최대 40만원 손주돌봄수당을 공약했다. 오세훈 후보는 건강 관리를 위한 전 시민 ‘스마트워치’ 지급을 약속했다. 부동산 공약과 마찬가지로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한 의문이 따르지만 ‘세수 증대’ ‘불요 사업 정리’ 등 막연한 설명 이상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후보들의 이같은 선심성 공약 경쟁을 양당 지도부가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이번 선거에 사활을 걸면서 무책임한 공약 경쟁에 열중하고 있다. 민주당이 부산시장 선거 대역전을 위해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처리를 밀어붙이자 그간 어정쩡한 국민의힘 지도부도 ‘특별법 적극 찬성’ 기조로 돌아섰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여기에 더해 ‘한일 해저터널’ 건설이라는 깜짝 카드까지 내놨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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