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위기 가장 큰 원인은 정치.. 각각의 영역 분리돼야" [데스크가 만난 사람]

파이낸셜뉴스 2021. 2. 1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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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법관의 위법·판결 오류 바로잡는
사법부 통제기능으로서의
법관 탄핵 제도 활성화 찬성
임성근 부장판사는 시점이 문제
입법부, 예산으로 사법부 압박
국회의원은 고소·고발로 공격
외부 견제 균형 있게 공존하며
사법부 자정 노력 기다려 줘야
검찰의 권력 집중 기소독점 폐해

2년간 전국 3만명 변호사를 대표하는 대한변호사협회를 이끌어 온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이달 말 임기를 마무리한다. 이 회장의 임기 동안 대한민국 법조계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변화를 겪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출범과 법무부의 검찰개혁 드라이브, 헌정 사상 최초의 법관탄핵 이슈까지 크고 작은 일들을 눈앞에서 지켜본 이 회장은 '사법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이 분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견제와 균형'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종속과 지배'로 이어지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을 지난 10일 서울 테헤란로 대한변협회관에서 파이낸셜뉴스 단독으로 만났다.

지난 10일 서울 테헤란로 대한변협회관에서 만난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사법과 정치 영역의 분리' '견제와 균형' 등을 강조했다. 50대 변협 회장인 이 회장의 임기는 이달 말 끝난다. 사진=박범준 기자

대담 = 김규성 사회부장·부국장

―법관 탄핵 이슈가 최근 법조계 최고의 화두로 떠올랐다. 법관 탄핵 제도에 대한 찬반부터 사법부에 대한 입법부의 지나친 개입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개인적으론 법관 탄핵 제도에 대해 찬성하는 쪽이다. 법관들의 위법, 판결의 오류를 바로잡는 기능이 절실하다.

물론 법관 통제 수단은 내부에도 있다. 3심과 재심 제도다. 이를 통해 하위 법원에서의 판단을 다시 한 번 심사하고 오류를 시정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명예나 부를 추구하기보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 늘었다. 젊은 법관들을 중심으로 성과를 통해 승진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줄었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판결에 대한 법관들의 정성과 신중함이 과거보다 줄어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때문에 탄핵 제도가 사법부 통제기능으로서 활성화돼야 한다. 외부에 의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거다. 입법부가 사법부를 견제하는 시스템이다. 입법부가 사법부를 종속시킨다는 것과는 다르다.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맡겨보자는 거다.

다만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소추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시점의 문제다. 탄핵을 하려면 이슈가 불거졌을 당시 빨리 이뤄졌어야 한다. 이미 오래 전에 병을 이유로 사퇴의사를 표시한 임 판사의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탄핵을 발의하고 추진한다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많다. 굳이 이 시점에, 특정인에 대해 탄핵을 추진하는 것보단 신분이 박탈될 수도 있다는 경고의 효과만 있었어도 충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탄핵 제도가 정치논리로 빠져버린 듯하다. 또 하나의 갈등을 만드는 것보단 탄핵 제도가 이번 사태를 통해 제대로 정비됐으면 한다. 법원과 법관이 독립을 인정받더라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할 경우 그 권리가 박탈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도 자연스럽게 제기되는데.

▲사법부는 우리 사회 갈등의 최후의 보루다. 신뢰할 수 있는 국가 기관을 만들고 그 판단에 따르겠다고 사회가 합의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모든 일을 다 사법부로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국회의원들이 고소·고발의 최전방에 서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법부 판단이 조금이라도 불리하면 법관에 대한 비판, 법원에 대한 공격이 이어진다. 사회적 합의,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일이다.

최근 발생한 사법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정치에 있다. 입법부가 예산을 무기로 사법부를 압박한다. 사법부 예산 독립이 필요한 이유다. 약 560조에 육박하는 국가 예산에서 사법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2조원 남짓이다. 극히 적은 예산으로 사법부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예산에 대한 자율권을 더 보장하고 법관과 법원공무원의 수를 늘려 사법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

물론 내부 문제도 있다. 사법부 스스로의 통제 장치가 원활히 작동이 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장이 법관 인사 등에서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행사했던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사법부 스스로도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노력을 장기적 관점에서 기다려 줘야 한다. 70년이 넘은 사법부 역사가 한 순간에 변화하길 바라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과 같다. 내부의 노력과 외부의 견제가 균형 있게 공존해야 한다. 변협은 물론, 정치권과 언론, 사회단체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이번엔 검찰 쪽을 한 번 보자. 검찰개혁이 중요한 화두 중 하나로 이어지고 있는데.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견제와 균형이다. 권력은 나눌수록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좋다.

지금은 지나치게 검찰에 권력이 집중돼 있는 상황이다. 수사도 하고 공소도 하는 기소독점주의의 폐해다. 이제는 검찰의 권력을 분산하는 게 맞다. 시대의 흐름이다.

경찰에게 일반 형사사건의 수사권과 종결권을 줘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경찰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가져가면 경찰 역시 지나치게 비대해질 수 있다. 때문에 수사경찰과 행정경찰, 중앙경찰과 자치경찰을 분리하고 정보 담당 기관을 신설해 정보 역시 분리해야 한다.

검찰 내부에서 수사와 기소가 분리될 경우 검찰의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기소검사가 수사기록을 파악하고 기소하는 데 까지 두 배, 세 배의 노력이 들어간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분리해 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

―법무부와 검찰 간의 갈등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셨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관계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는 듯 한데.

▲추 전 장관, 윤 총장 모두 소통과 수용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다. 다만 시기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었고 개혁의 속도에 대한 견해차 때문에 갈등으로 번진 듯하다. 정치권의 개입도 두 분이 의사를 조율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박 장관은 외부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최근 실시한 인사에서 박 장관은 변협이 평가한 우수검사들을 희망보직으로 우선 배치했다. 과거 일방적으로 인사를 진행했던 것에 비해 외부 견해가 반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부분은 아직 평가하기 이르지만 외부의 시각이 반영됐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봐야 할 듯하다.

―공수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공수처 1호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다.

▲1호 수사 대상은 누구다, 누가 돼야 한다는 식의 추측들은 말 그대로 공수처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본다. 1호 사건은 공수처가 스스로 정해야 한다. 외부에서 1호 사건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다. 1호 사건이 여권, 혹은 야권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극렬한 반대가 예상된다. '정치검찰'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주장했던 정치권이 공수처를 두고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셈이다. 공수처 출범 목적 중 하나가 검찰개혁이라면 시행착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수처는 이제 막 싹이 트기 시작한 나무와 같다. 싹이 트기 시작할 때 너무 많은 물을 주면 오히려 나무가 죽는다. 지나친 관심, 정치권의 의사를 반영하고자 하는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언급했듯 공수처는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다. 공수처 내·외부에서 공수처를 지원도 하고 견제도 하는 다양한 기구를 구성해 잘 만들어가야 한다.

―최근 어려운 상황 속에서 변협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도 힘을 쏟으신 걸로 안다.

▲변협은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가장 처음으로 12억6000만원의 성금을 회원들로부터 받아 어려운 분들에게 기부했다. 또 전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Q&A'라는 이름의 법률상담집을 발간해 배포했다. 대형 로펌들도 모두 공익법인을 설립해서 활발한 공익사업에 나서는 중이다. 많은 변호사들이 뜻을 모아 다양한 공익사업과 무료 법률상담, 무료급식 등 여러 부분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임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기억할 만한 성과를 꼽자면.

▲대한민국 법조계 역사상 가장 큰 행사인 세계변호사협회(IBA) 총회를 지난 2019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코로나19 창궐을 피해서 큰 행사를 개최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자 성과였다. 내부적으론 공수처가 출범하는 데 변협이 추천한 후보가 공수처장으로 임명된 것도 중요한 성과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뜻깊게 생각하는 변화는 변론권의 확대다. 변론권 확대는 인권 보장의 확대와 같다. 변론권 확대의 가장 큰 수혜자는 결국 국민이다. 경찰, 혹은 검찰의 조사에서 과거엔 변호사 입회가 쉽지 않았고 메모조차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수사 중 변호인 입회, 전자기기를 활용한 메모 등이 가능해졌고 휴식권 보장도 이뤄졌다. 또 수사기록 작성에서 변호사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기재될 수 있도록 한 것 역시 큰 변화다. 변협의 사명은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다. 이게 바로 변호사의 존재 이유다. 때문에 인권옹호의 사명을 다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 이찬희 변협 회장은

2001년 사법연수원을 30기로 수료하고 본격적으로 법조계에 발을 내디딘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소통에 능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등과 성향을 가리지 않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변협을 이끌었다. 변협 회장 당선 직전엔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서울변회 회장 당시 소통과 인권을 중시했던 이 회장의 모습은 변협 회장 임기를 마무리하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고 소통을 중시한 이 회장의 모습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과 공수처장 임명 등 굵직굵직한 이슈가 많았던 최근 법조계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이 회장의 리더십 아래 변협이 추천한 인물이 초대 공수처장으로 임명됐다.

정리=jasonchoi@fnnews.com 최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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