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잘못 인정하고 협상 나서라" SK "연 매출 넘는 합의금 과해"
판결부담 덜고 협상 여지생겨
수조원대 합의금 격차가 변수
18일 열릴 전지산업協 이사회
김종현·지동섭 회동할지 주목
최태원, 3월중 상의회장 취임
이달내 양사 협상가닥 전망도
◆ LG-SK 배터리 소송 ◆
2019년부터 약 2년간에 걸친 소송으로 양측 감정의 골이 깊어지다 보니 합의는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ITC 최종 결정 직전까지도 LG는 2조~3조원에 이르는 합의금을, SK는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지 않고 1000억~수천억 원대 합의금을 제시하면서 평행선을 달렸다.
실제로 ITC 결정이 나온 설 연휴에 양측 사이에 접촉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협상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ITC 결정이 확정된 만큼, 배임 등 부담에서 벗어난 경영자들이 본격적으로 협상에 나설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다음달 초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취임을 전후해서 협상 가닥이 잡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이달 18일에는 한국전지산업협회 이사회도 예정돼 있다. 국내 배터리 3사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할 예정으로,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과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 대표 간 만남이 성사될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ITC는 지난 10일 LG에너지솔루션이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를 확정한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이 미국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다며 '미국 내 수입 금지 10년'을 명령했다. 단 포드의 전기픽업트럭 F-150 배터리 부품·소재는 4년간, 폭스바겐 MEB 배터리 부품·소재는 2년간 수입을 허용했다. 또한 이미 미국에서 판매 중인 기아 전기차용 배터리 수리나 교체를 위한 전지 제품의 수입은 허용했다. 이 밖에 ITC는 이미 수입된 침해 품목에 대해서도 미국 내 생산, 유통과 판매를 금지하는 '영업비밀 침해 중지 10년 명령'을 내렸다. 이번 결정에서 ITC는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2차전지 관련 영업비밀을 탈취해 연구개발, 생산, 테스트, 수주, 마케팅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용함으로써 경제적 피해를 초래했다는 LG에너지솔루션의 주장을 모두 인정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ITC 소송에서 30여 년간 수십조 원의 투자로 쌓아온 지식재산권이 정당하게 보호받았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향후 글로벌 경쟁사들로부터 있을 수 있는 인력과 기술 탈취 행태에 제동을 걸어 국내 배터리 업체의 기술력이 보호받고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는 ITC 최종 결정 이후 보고서에서 "합의금이 5조원 이상 될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이번 결정에 대해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최악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ITC 결정에 대해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실질적인 판단이 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며, 대통령 리뷰(Presidential Review·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판단) 등을 통해 해당 결정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ITC는 판결 후 60일 이내 미국 대통령 리뷰를 거친 후 최종 결정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SK 배터리는 지난 10년 이상 안전성 문제가 일어난 적 없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배터리'라는 점, 그리고 이를 미국 자동차 기업을 통해 미국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 없게 되면, 미국 기업 및 소비자 입장에서는 큰 손실이라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하고 있는 배터리 공장은 최고 50억달러가 투자돼 최대 6000여 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규모"라며 "이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게 된다며 그 피해는 단순히 SK를 넘어 미국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음을 적극 전달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대통령 거부권 가능성은 낮게 보는 상황이다. ITC가 폭스바겐·포드 등에 대해서 이미 수입 허용 유예 기간을 뒀기 때문이다. 또 특허침해가 아닌 영업비밀 탈취와 관련해선 거부권 행사 전례가 없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평소 지식재산권을 강조해왔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양사가 대승적인 협의와 협력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C 최종 결정 발표 직후 이뤄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SK이노베이션과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SK이노베이션이 이제라도 ITC 최종 결정을 인정하고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는 선에서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에는 진정성 있는 태도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사과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SK이노베이션은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배터리부문 매출이 2조원이 안 되는 상황에서 LG 측이 요구하는 합의금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합의에 대해서는 대통령 리뷰 전후 언제든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양사가 이르면 다음달 초에라도 조기 합의에 나설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최 회장의 대한상의 회장 취임식과 미국 대통령 리뷰 등은 각각 일정이 한두 달 내 데드라인에 도달하게 된다.
손승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이번 판결은 향후 LG가 유럽·중국 등에서 SK를 상대로 추가 소송을 걸면 크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단초가 될 수 있다"며 "유럽·중국 등이 지식재산권 보호가 강력한 나라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조재필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는 "SK이노베이션은 포드F 시리즈에 니켈 함량이 90% 이상인 진일보된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인데, 지금 소송 결과대로라면 SK이노베이션은 기술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게 된다"며 "대승적 차원에서 서로 합의를 서두르는 것이 K배터리가 발전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이윤재 기자 / 최근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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