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미래] 인간의 책임, 과학자의 책무 / 곽노필

곽노필 2021. 2. 1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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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술회의에서였다. 누군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이후 기후가 비교적 안정돼 있다는 홀로세(Holocene)에 관해 이야기했다. 갑자기 이 말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했다. 아니다, 우리는 인류세(Anthropocene)에 살고 있다."

크뤼천이 최초로 설정한 인류세의 시작점은 18세기 후반이었다.

농업이 시작된 이후 초목 생물량은 절반으로 줄었다.

전 세계 산림의 40%, 습지의 85%가 사라졌고 바다의 65% 이상이 손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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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곽노필 ㅣ 콘텐츠기획팀 선임기자

“어떤 학술회의에서였다. 누군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이후 기후가 비교적 안정돼 있다는 홀로세(Holocene)에 관해 이야기했다. 갑자기 이 말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했다. 아니다, 우리는 인류세(Anthropocene)에 살고 있다.”

인류세란 말을 전 세계에 널리 퍼뜨린 파울 크뤼천 박사가 타계했다. 인류세는 지구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확 틔워줬다. 인류는 단순히 지구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집단이라는 걸 깨닫게 해줬다. 수천년 문명사에서 뭘 어떻게 했길래, 수천만년이 지속된다는 지질시대 변경론까지 거론될까?

크뤼천이 최초로 설정한 인류세의 시작점은 18세기 후반이었다. 산업화와 함께 온실가스 농도가 증가한 데 주목한 결과다. 그러나 인류가 끼친 영향이 어디 대기환경뿐이겠는가? 연구들을 모아 보면 인간이 지구에 가한 타격은 크게 네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켰다. 농업이 시작된 이후 초목 생물량은 절반으로 줄었다. 육지의 3분의 2가 개조됐다. 야생 포유류는 4분의 1로 줄었다. 전 세계 산림의 40%, 습지의 85%가 사라졌고 바다의 65% 이상이 손상됐다. 산호초는 200년도 안 돼 절반으로 줄었다.

둘째, 생물 멸종을 가속화했다. 지난 500년 동안 확인된 것만 1300종이다. 확인하지 못한 게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의 멸종 속도는 자연상태에서보다 1000배 빠르다. 700만~1000만종의 진핵생물 중 100만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셋째, 지구 기후를 변화시켰다. 산업화 이후 지구 온도는 1도 넘게 올랐다. 10~30년 후엔 1.5도를 초과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산업화 이후 쌓인 대기 중 이산화탄소 무게는 1조톤에 이른다. 지구 전체를 1m 두께로 덮는 양이다.

넷째, 지구 표면을 더럽혔다. 시설, 제품 등 인공물 무게가 지구 생명체 전체보다 많아졌다. 1900년 이후 인공물은 20년마다 두배로 늘었다. 지구판 ‘무어의 법칙’이랄까. 전 세계 도로는 지구를 60만 조각으로 쪼갰다. 한 해에 플라스틱 500만~1300만톤이 바다로 흘러가고 농약 400만톤이 땅에 뿌려진다.

그러는 동안 인구는 50년 새 두배가 됐다. 재화·서비스 생산량은 70년 새 13배가 됐다. 편리한 화석연료에 중독돼 재생 능력을 뛰어넘는 수요가 만들어졌다. 인간의 생태발자국은 지구 1.7개가 있어야 감당할 수 있다. 미래의 것을 앞당겨 썼다는 얘기다. 인간이 생태를 대상으로 ‘돌려막기식 사기’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덴마크 연구진이 계산해보니 내일 당장 인류가 사라져도 자연이 원상태를 회복하는 데는 500만년이 걸린다고 한다.

지구의 병이 그렇게 깊다면 치료도 그에 맞춰야 한다. 문명의 방향을 확장에서 보존으로 바꾸는 정도의 과감한 태도가 필요하다. 당국이나 기업, 생활인들의 각성만으로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 과학자들의 집요한 탐구가 없었다면 인류는 오늘날의 번영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병든 지구를 회복시키는 데도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자원을 획기적으로 적게 쓰면서 지구의 건강을 되찾아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과제가 과학자들 앞에 놓였다. 크뤼천은 인류세를 경고하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대기에 황 입자를 뿌려 지구를 식히자는 그의 제안은 대증요법적 발상이란 비판을 듣기는 했지만, 해법까지 고민하는 과학자의 책무 의식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판을 펼쳤다면, 뒤처리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제 그런 연구에 우선순위를 둘 때가 왔다. 지속가능한 지구라는, 분명한 가치 지향을 가진 과학자들의 등장을 기대한다.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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