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이기는 건 나뿐" 김종인 "말도 안돼"..野단일화 잘 될까[정치쫌!]
김종인·안철수, 각자 양보 못할 사정
단일화 필요성은 인정..3월 중 결판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우리 당 서울시장 후보가 결정되면 단일화나 본선거에서 모두 이길 수 있다.”(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유일하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이기는 후보가 안철수다. 대부분 여론조사가 그렇다.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싸워서 오차 범위 밖으로 이긴다.”(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서울시장 보선에 앞서 ‘야권주자 단일화’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보인다. 김 위원장과 안 대표가 양보없는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두 사람 모두 필승을 위해선 단일화가 꼭 있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채널A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초창기에는 단일화에 대해 조금 염려를 해 삼자대결도 생각했지만, 최근 상황은 단일화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야권 단일화는 숙명적"이라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출사표를 낸 직후부터 지금껏 야권 단일화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은 당 내 주자로 최종 단일화를 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하다. 나경원·오세훈·오신환·조은희 예비후보 중 한 명이 안 대표를 눌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 위원장은 제1야당이 ‘미니 대선’으로 불리는 서울시장 보선에서 후보를 내지 못한다면 불임정당이란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을 알고 있다. 경제학자라는 직함만큼 전략가이자 ‘선거 기술자’로 명성을 쌓은 김 위원장 입장에선 쉽게 용납할 수 없다. 그는 이미 지난 21대 총선에서 결과적으로 참패해 체면을 구겼다. 4월 이후 직에서 물러나기로 한 그에게는 마지막 만회의 순간이 될 수 있는데, 이 기회를 안 대표에게 넘겨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가 제1야당의 수장으로 정계복귀한 명분 중 하나는 정권 교체였다. 이번 보선에서 승리를 이끌면 제1야당의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정권 교체의 교두보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갑자기 ‘제3지대’ 주자가 등장하고, 그가 공을 들인 제1야당 주자가 링 위에도 오르지 못하고 밀려나는 것은 그의 시나리오에는 없는 일이다.
김 위원장이 볼 때는 야권 단일화의 상대가 하필 안 대표란 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다. 김 위원장은 노골적으로 안 대표에 대한 악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김 위원장은 안 대표를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본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그는 이달 초 온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공영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안 대표를 향해 “스스로 불안정하니까 이 얘기했다 저 얘기했다 한다”며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인식이 안 돼 그러는가”라며 직격탄을 쐈다. 이런 말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안 대표를 향해 “뚱딴지 같은 소리”, “서울시장 후보에 집착하는 사람이 몸 달아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는 등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1년 안 대표의 ‘멘토’라는 말도 들었지만, 근 1년만에 안 대표에게 실망하고 등을 돌렸다. 그는 이미 2012년부터 공개석상에서 안 대표를 저격하기 시작했다. 그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 경선캠프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을 때 안 대표를 향해 “정치의 ABC도 안 돼 있다”고 했다. 김재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분위기를 이같이 회상했다.
“‘안철수 현상’이 나라를 뒤덮은 2012년 여름, 김 위원장의 사무실에서 안 대표의 인물 됨됨이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함께 안 대표의 멘토 역할을 하다가 결별한 후였다. 그는 안 대표를 정치판에서 들을 수 있는 최악으로 평가했다.”
안 대표도 이번만큼은 ‘철수 정치’를 할 수 없다. 그도 사실상 정치 생명을 걸고 뛰어들었기에 절실한 상황이다.
사업가면서 청년 멘토로 이름을 알린 안 대표는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을 계기로 정치권에 입성했다. 그는 당시 자신보다 지지율이 한참 낮은 박원순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다. 2012년 18대 대선 정국에선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 협상을 거쳐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7년 19대 대선에선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에게 밀려 3위를 기록했고, 2018년 서울시장 선거 때도 3위로 참패했다. 한때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키고, 국민의당의 ‘녹색 돌풍’을 이끌었던 안 대표는 결정적인 순간에 거듭 물러나면서 정치적 입지가 쪼그라들었다. 그의 입장에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것이다.
안 대표의 야권 단일후보를 위한 결연한 의지는 행보에서 묻어난다. 그는 지난 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울만 놓고 보면 야권은 최근 10년간 7연패를 했다”며 국민의힘을 저격하는가 하면, 국민의힘 내 ‘양강’으로 칭해지는 나경원·오세훈 예비후보를 놓고는 “같은 대결구도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지는 것으로 나온다”고 했다.
실제로 안 대표를 향한 여론의 분위기는 예의주시할 만하다. 14일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엠브레인퍼블릭이 뉴스1 의뢰로 지난 8~9일 서울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공개한 조사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만약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민주당 소속)과 안 대표가 대결한다면 누구에게 투표할 생각인가’라는 물음에 안 대표는 45.2%를 얻어 35.3%를 얻은 박 전 장관을 앞질렀다.
다음 달 초면 야권주자 단일화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안 대표는 금태섭 전 의원 등과 제3지대 경선을 통해 다음 달 1일 단일후보를 확정한다. 국민의힘은 같은 달 4일 본경선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1~4일 사이 양 진영 간 단일화 협상이 이뤄질 수 있고, 국민의힘에서 최후 1명을 가린 이후 끝장 협상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과 안 대표 모두 단일화 그 자체를 놓고는 필요성을 인정한 만큼 협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야권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든 안 대표든 한 명은 뜻을 접어야 할 시기가 온다”며 “이들 모두 논의 테이블에 나서기 직전까지 여론을 자기 편으로 이끌기 위해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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